• 신편 한국사
  • 고대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Ⅱ. 신석기문화
  • 3. 신석기시대의 생업과 사회
  • 1) 생업
  • (2) 농경과 목축
  • 나. 동물사육

나. 동물사육

 동물사육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는 많지 않으나 개와 돼지가 신석기시대부터 가축으로 길러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688)김신규, 앞의 글(1970). 개뼈는 서포항 1·2기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어 이른 시기에 이미 사육되었다고 보여진다. 동물뼈 중에서 개가 차지하는 비중을 마리수로 보면 서포항유적은 7.9%, 농포유적은 8.3%, 호곡동유적은 7.4%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동북지방에서 개를 많이 길렀음을 알 수 있다. 개뼈는 궁산·동삼동·상노대도 등 다른 신석기유적에서도 발견되어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며689)동삼동유적(L. L. Sample, 앞의 글, 94쪽)에서는 출토층위가 보고되어 있지 않고, 상노대도유적(손보기, 앞의 책)에서는 상층인 II층에서 보고되었다. 수가리유적에서는 교란층에서 발견되어 신석기시대 뼈라는 확증이 없다. 농포동유적에서는 개머리모양 토제품도 발견되었다.

 각 유적에서 출토된 개의 두개골로 보면, 긴 얼굴의 다소 원시적인 형과 작고 짧은 분화된 형 등 크기와 이마·주둥이에서 여러 모습이 나타나고 있어 개의 종류가 다양하였음을 보여준다.690)김신규, 앞의 글(1970), 86·114쪽. 개의 선조인 늑대가 신석기시대뿐 아니라 이전의 구석기시대의 사냥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적기 때문에 개는 식용보다는 사냥용으로 많이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멧돼지에서 기원한 집돼지는 내한성이 강하고 기름진 고기를 제공하여 동아시아에서 사육된 가축 중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신석기시대 후기에 속하는 서포항 4기 이후의 층, 호곡동 1기층 등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전체 동물뼈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마리수로 보면 서포항은 0.63%, 호곡동은 3.7%에 불과하다. 같은 동북지방이라도 농포동에서는 모두 멧돼지만 발견되었고, 서포항과 호곡동에서도 멧돼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높다. 집돼지뼈로 보고되고 있는 것들도 멧돼지의 표징이 잔존하고 있는 것들이 많아 가축화가 과도기적 단계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691)김신규, 위의 글, 114쪽.

 끝으로 궁산유적에서는 열대성동물에 속하는 물소뼈 2마리분이 발견되었는데 북한에서는 뿔의 길이가 짧다 하여 가축으로 보면서도 고기를 제공하는 짐승이라기보다는 농업이 발전하면서 부림짐승으로 길렀다고 주장한다.692)김신규, 위의 글, 103·113쪽. 그러나 뿔의 길이만으로 가축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고, 아래턱뼈가 대단히 늙은 개체에 속한다고 한 점으로 보아도 가축으로 볼 근거는 미약하다.

<安承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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