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角抵·角力)에 대하여는 중국정사의 동이열전 등에 전하는 기록은 없고, 다만≪후한서≫부여국전에 후한 順帝 永和 원년(136) 부여왕이 직접 후한의 도읍지 낙양에 가서 伎樂의 한 종류라는 角抵戱를 얻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고구려 벽화고분 角抵塚(4세기 말)의 角抵圖에서 고구려사람들의 씨름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런데≪일본서기≫皇極天皇 원년(642;의자왕 2년)조에 의하면, 당시 백제에서 온 使人 대좌평 智積 등에게 일본조정에서 연회를 베풀어 주고, 이미 일본에 체류중인 백제왕자(혹은 왕의 아우) 翹岐가 健兒(膂力 즉 근력이 센자)들에게 씨름인 相撲(捔力으로 표기하기도 하였음)을 보여주었다고 하였다.801)≪日本書紀≫권 24, 皇極天皇 원년 7월. 결국 친왜세력인 교기에 의하여 고구려와 같이 이미 백제에서도 유행하고 있었던 씨름이 일본에 전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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