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漆樹는 그 즙을 물건에 바르면 황금색이 나는 나무이다. 이에 대하여≪통전≫백제전에서는 백제국 서남쪽 바다에 세 개의 섬이 있는데 이곳에 황색의 칠을 채취할 수 있는 나무가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나무는 小榎樹(小榎) 즉 작은 싸리나무와 유사하나 그것보다는 크며 6월에 즙을 내어 기물에 바르면 황금색이 되어 눈이 부시다는 것이다.802)≪通典≫권 185, 邊方 1, 東夷 上, 百濟. 또≪鷄林遺事≫에서는 鷄林志를 인용하여, 고려의 황칠은 섬에서 산출되며 6월에 즙액을 채취하는데 그 빛은 황금 빛깔로서 본래 백제에서 산출되던 것을 중국 浙江省 사람들이 新羅漆이라고 했다는 것이다.803)方鍾鉉,<鷄林遺事硏究>(≪東方學志≫2, 1955). 洪萬選의≪山林經濟≫種樹편에는 황칠수가「千金木」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편 황칠은 제주도에서「나나니」란 이름으로 불리우고 나주의 扇匠에 의하여 근래까지 전승되고 있다고 한다.804)李宗碩,<朝鮮漆의 한 特徵에 관하여>(≪韓國美術史學大會硏究發表論旨≫, 1979). 황칠은 옷칠이 아니라 락카와 같으며, 기물에 한번 칠을 하면 나무결[木理]이 금빛을 띠면서 생생하게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런데≪신당서≫에는 “당나라가 요동성을 공격할 때, 백제에서 당나라에 금칠을 한 갑옷[金漆鎧]을 바치고 玄金(烏金·鐵)을 五綵로 칠하여 山五文鎧를 만들어 보냈으므로, 사관들이 이를 입고 종군하였다. 당 태종과 李勣이 합류할 때 갑옷이 햇빛에 번쩍거렸다”고 하는 기사를 전하고 있다. 백제는 무왕 25년(624;당고조 7년)에 당에 사신을 보내어「光明甲」을 바쳤다고 하였다. 또 당 태종이 백제에 사신을 보내 金漆을 채취하여 철갑에 칠하도록 하였는데 모두 黃紫색으로 빛나게 하였으며, 5채로 玄金을 물들여 山文甲을 만들었다고 한다.805)≪冊府元龜≫권 970, 外臣部 朝貢 3 및 권 117, 帝王部 親征 2.
이상에서 당과 고구려와의 전쟁이 벌어졌던 때에 백제가 황금칠을 한 光明甲을 바쳤다는 것이라던가, 또한 당 태종이 직접 백제에 사신을 보내어 백제로부터 갑옷에 칠할 금칠을 채취하도록 하였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다. 결국 백제의 서해 3도에 자생하는 小榎樹에서 얻은 황칠로 만들어진 갑옷이 멀리 당나라에까지 알려진 것처럼, 황칠수는 당시 목공예로로터 갑옷에 이르기까지 매우 소중한 칠의 원료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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