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서에는 백제 초기 무렵의 연령집단에 의해 행하여졌던 공동작업이나 성년식을 위한 유습의 일단이 전해진다. 그것은 고행의 통과의례(Initiation)와 유사한데 다음과 같다.
나라 안에 무슨 일이 있거나 관가에서 성곽을 쌓게 되면 여러 소년 중 용감하고 장한 자는 모두 등가죽을 뚫고 거기에 한 발쯤되는 나무막대를 매달아 온종일 소리 지르며 일을 하는데도 아프게 여기지 않는다. 그리하여 사람들은(國人) 그들에게 일하기를 권장하고 또한 그들을 한 사람의 튼튼한 사나이(健兒)로 여긴다(≪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韓).
이에 대하여 노예제사회의 강제노동으로 보기도 하고,806)白南雲,≪朝鮮社會經濟史≫(改造社, 1933). 성년식의 통과의례로 보기도 하며807)三品彰英,≪新羅花郞の硏究≫(三省堂, 1943). 노동기구인 ‘지개’로 보는 견해도 있다.808)李丙燾,<三韓의 社會相>(≪韓國史≫古代篇, 震檀學會, 1965). 아마도 백제에 통합되기 이전의 마한 초기사회에서 그들 부족의 수호를 위하여 일찍부터 구성된 청년무사단체의 수련과정에서 성년식을 겸한 고행이 요청되었던 사실을 전한 것이 아닌가 한다. 가령 신라의 화랑도나 고구려의 扃堂과 같이, 후일 백제에서도 청년무사단인 修士들의 수행과정이 있었음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809)權兌遠,<三韓의 社會風俗考察>(앞의 책, 1980).
역시≪삼국지≫위지 및≪통전≫한전에 細尾鷄 혹은 長尾鷄에 대하여 전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세미계는 문신과 같이 남방사회의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남방 苗族社會에서 鷄神崇拜가 일찍부터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810)위와 같음.
<權兌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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