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고분은 규모면에서나 벽화면에서 단연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被葬者가 알려져 있는 고분은 매우 드물다. 통구지방의 모두루총이나 평양지방의 안악 3호분과 덕흥리 고분은 묵서명에 의하여 각각 ‘牟頭婁’ ‘冬壽’ ‘□鎭’이라는 피장자의 이름이 밝혀져 있다. 그러나 이중 안악 3호분은 고분의 규모, 벽화의 호화로움과 다양함, 묵서명의 위치, 동수라는 지방관의 지위와 묵서명의 내용 등의 이유로 美川王陵 또는 故國原王陵으로 수정·추정되고 있다.521)姜仁求, 앞의 글(1991). 97∼99쪽.
이외에 중요 고분에 대하여는 그 나름의 피장자가 추정되고 있다. 집안의 장군총은 광개토대왕릉 또는 장수왕릉으로, 태왕릉은 광개토대왕릉으로522)方起東,<千秋塚太王陵將軍塚>(≪好太王碑と高句麗遺蹟≫, 讀賣新聞社, 1992), 230∼252쪽., 평양 眞坡里 10호분은 東明王陵으로523)최택선,<고구려 벽화무덤의 피장자에 관한 연구>(≪고고민속논문집≫11, 1988), 49쪽., 平成 慶新里 1호분(漢王墓)은 장수왕릉으로, 평양 土浦里 大塚은 文咨王陵 또는 安藏王陵으로, 평양 湖南里 四神塚은 安原王陵 또는 陽原王陵으로524)姜仁求, 앞의 글(1990), 69쪽., 江西大墓는 嬰陽王陵으로525)최택선, 앞의 글., 江西中墓는 陽原王陵 또는 平原王陵526)姜仁求, 앞의 글(1990), 69쪽. 등으로 각각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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