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적석목곽분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부장유물이 다른 종류의 묘제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厚葬이라는 데 있다. 구조상으로 부장유물만을 위한 부곽을 시설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副葬櫃를 설치하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종류도 다양하여 금관을 비롯한 이식·과대·신발·頸飾·釧 등의 장신구류, 환두대도를 비롯한 대도·소도·도자 등의 도검류, 철모·철창·철촉·단갑·규갑·有刺利器 등의 무구류, 고배·장경호·단경호·광구호·대호 등의 토기류, 철부·보습·철겸 등의 농구류, 障泥·馬鞍具·재갈·행엽·운주·등자 등의 마구류, 동합·동완·철부 등의 식기류, 이외에 鐵鋌(중간재 및 교환가치 단위로 사용)·유리제완·金製寶劍 등등 유물이 다양하고 풍부하여 일상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도구와 용품을 부장한 듯하다.577)국립경주박물관,≪菊隱 李養璿 蒐集文化財≫(1987).
≪국립경주박물관도록≫(통천문화사, 1988).
이들 유물들은 고구려·백제·가야가 대개 비슷하나, 신라의 금관만은 형식과 양식이 특이하다. 금관은 순금제·은제·금동제가 있다. 얇은 금판을 원형으로 하고, 그 위에 장식을 세우는데, 전면과 양측 면에는 主幹에 맞가지형을 圖案化한 出(山)字형 立飾을 세우고, 후면은 鹿角형의 입식을 세우며, 측면에는 曲玉과 鏤金細工한 장식을 아래로 늘인다. 이 금관의 형식은 시베리아 샤만의 관에서 유래하였다는 견해가 있다.578)金元龍,<新羅金冠의 系統>(≪曉城 趙明基博士華甲紀念佛敎史學論叢≫, 1964). 금관이 출토된 고분은 금관총·금령총·서봉총·천마총·황남대총북분·교동고분 등이 알려져 있다.579)金元龍, 앞의 책(1986), 233쪽. 그리고 유리제완과 금제보검도 중동지방에서 그 형식과 제법이 전래되었다고 보고 있다.580)이인숙,≪한국의 古代 유리≫(도서출판 創文, 1993), 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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