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산선문 외에 혜소는 도의나 홍척과 비슷한 시기에, 하동의 雙谿寺에서 산문을 이루어 번창하고 있었다. 혜소는 哀莊王 5년(804)에 중국에 들어가 神鑑의 법인을 받고는, 흥덕왕 5년(830)에 귀국하였으며 魚山梵唄를 전하였다. 특히 쌍계사에는 六祖의 影堂이 있는데, 신라 金大悲가 慧能의 머리를 취해오게 하는 연기설화와 연고하여 주목된다.
고려 왕건의 先代 세력과 연결을 가진 順之는 五冠山 瑞雲寺에서 潙仰禪風을 펴고 있었다. 왕건과 연결된 寶壤은 청도의 雲門寺에서 산문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의 선풍은 雲門宗 계통이었다. 이들 외에도 9산선문 중에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산문을 이루고 있었던 자들이 많았다. 신라말의 普耀선사는 吳越로부터 대장경을 싣고 왔는데, 海龍王寺를 열어 그 開山祖가 되었다. 해룡선문도 무신란 이후 고려 후기에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껏 논해온 것과는 달리 나말여초에 9산선문이 형성되어 있지 않고, 모두 曹溪宗으로 불렸다는 주장도 있다.400)許興植,<禪宗九山門과 禪門禮懺文의 問題點>(≪歷史敎育≫5, 慶北大, 1983), 124쪽. 9산문은 고려 후기 禪宗界를 반영하는 것이지 나말여초의 선종계를 망라한 체계가 아니라 했다. 다만 그것은 嗣子傳承되는 독립된 산문을 이루고 있었으며, 9산문 외에 선종산문이 더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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