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Ⅰ. 불교
  • 1. 불교사상의 전개
  • 1) 나말려초의 교종과 선종
  • (4) 나말려초의 화엄결사
  • 나. 개태사의 창건

나. 개태사의 창건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은 민심의 교화에 관심을 가졌다. 본래 그는 불교를 숭상하였지만, 이 때에 승려들과의 결연을 돈독히 하려는 것은 민심의 수합을 위한 것이었다. 사실 왕건은 오랫 동안 항복하지 않았던 강릉지역의 王順式이 항부해 오자, 開淸을 통해 이 지방민의 교화에 관심을 가졌다.029)金杜珍, 앞의 글(1981a), 150쪽. 왕건은 불법을 통해 삼한을 통일할 것과 백성을 진휼할 것을 특별히 강조하였다.

 후삼국통일 이후 왕건은 후백제지역 백성들을 위무하려 하였다. 그가 慶甫를 극진히 대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경보는 道詵의 풍수지리사상을 전해 받았다. 후삼국시대의 혼란기에 백성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던 것은 풍수지리사상이었다. 또한 경보는 견훤과 연결된 경력을 갖고 있었으므로 자연 그는 후백제지역의 민심을 잘 수습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왕건은 후백제를 통합한 후에 충남 連山에 開泰寺를 세웠다. 경보와의 결연이나 개태사의 창건은 모두 왕건의 후백제 舊民에 대한 교화나 민심 수습면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개태사를 창건한 왕건은 친히 그 願文을 지었다. 그 내용을 간략히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① 어려운 시기에 태어나 많은 어려움과 병란을 겪었으며, 사람들은 살아가기가 어렵게 되어 집안에서도 안도하지 못했다.

② 王建은 하늘에 맹서하고 백성을 도탄에서 구하고자 하였다. 몸소 전장에서 矢石을 맞기도 했으며 친히 방패와 칼을 잡고 잠들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丙申年에 백제병과 교전하여 그 흉악함을 물리치고 개가의 소리를 높이 드날리었다.

③ 스스로 죄과를 뉘우친 雚蒲의 적당과 溪洞의 흉악한 자들을 품에 받아들여 추호라도 다치지 않게 하였다.

④ 佛聖이 계속 도와준 것에 보답하고 山靈이 찬조해 준 것을 갚고자 하여 유사에게 명하여 절을 창건하고 開泰라 이름지었으며, 그 山名을 天護라 하였다(≪新增東國輿地勝覽≫권 18, 連山縣 佛宇).

 개태사의 창건 동기는 河南의 30여 군과 발해국인이 귀순해 왔기 때문이다. 자연 개태사를 세운 목적은 이들 귀순자의 연고지에 사는 백성들의 교화 내지 민심의 수합이었다. 호족연합책에 의해 귀부해 온 지방세력을 보다 안전하게 확보함으로써 왕건은 창업의 기반을 다지는 기틀로 삼았다. 후삼국시대에 각기 독자세력을 구축하고 있던 이질적인 지방세력을 보다 긴밀한 통일 고려국가의 체제 내로 묶는 데에, 왕건은 불교의 힘을 빌리고 있다. 왕건이 불법에 호소하고 있는 願文의 내용에서, 어려운 시기에 천명을 받아 삼한을 통일함으로써 백성을 도탄에서 구하게 된 것을 강조하였다. 특히 귀순자의 포용과 아울러 왕건은 이들을 조금이라도 범하고 상하게 한 바가 없음을 말했다. 이것은 그가 민심의 수합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개태사의 창건은 후백제인을 회유하기 위한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지니기도 하지만, 유독 그것이 화엄도량으로 나타난 데 중요한 뜻이 있다. 고려 초에 개태사에는 대장경이 판각되어 보관되어 있었다. 화엄교학은 融會的이어서 이질 집단의 통합사상으로 나타날 수 있게 된다. 신라 이래 그것은 전통적으로 중앙왕실에 의해 수용되었고,030)李基白,<新羅時代의 佛敎와 國家>(≪歷史學報≫111, 1986;≪新羅思想史硏究≫, 一潮閣, 1986, 257쪽). 지방세력을 포함한 모든 사회체제를 중앙왕실 속에 통합시키는 데 유리한 사상체계였다.

 왕건은 즉위하면서 화엄교학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태조 4년(921)에 왕건은 坦文을 法會에 불러들여 특별히 別和尙으로 대우하면서, 僧科를 주관하게 하였다. 선종이 크게 유행했던 나말려초에 화엄종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것은 왕권의 안정과 중앙집권 정치의 실현을 위해서였다. 후삼국이 통일되면서 왕건의 화엄교학에 대한 관심은 더 각별해졌다. 개태사 창건 이후 화엄학승들이 활동하고 있었으며, 광종 4년에는 화엄승려인 謙信이 국사로 봉해져 있었다.

<金杜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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