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과 2월의 정기적인 연중행사로서의 연등회 이외에도 수시로 대소 규모의 특설 연등회가 있었다. 문종 때 4회, 선종 때 1회, 예종 때 2회, 충렬왕 때 2회 등 모두 9회로 나타나는데, 사찰의 낙성과 경찬의 법회가 있을 때나 불상을 새로이 조성하였음을 경축할 때 열렸다.
문종 21년(1067) 정월에는 興王寺의 낙성을 기념하기 위한 연등회가 열려 대궐의 뜰에서 흥왕사의 문에 이르는 먼 길에 등을 즐비하게 5일간이나 달아 두고 밤마다 불을 밝히니 전례없는 장관을 이루었다. 또 6년 후인 문종 27년 2월에 정기적인 연등회를 마치고 다시 23일에는 다시 重光殿에서 연등회를 열었는데 이 때 시내에 3만 개의 등을 훤히 밝혀 불덕을 기리었다고 한다. 예종 10년(1115) 2월 18일과 그 이듬해 11년 2월 20일에 열렸던 연등도 정기적인 연등회와는 별개의 특설 연등회였다. 특설 연등회는 불교 의례에 연등의례를 병설하는 형식을 취하여 불교의례와 상호 교섭하게 함으로써 습합현상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리고 낙성, 경찬 등의 불교의례는 축제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전승의례의 축제적 요소와 쉽게 동화될 수 있었다. 연등회의 불교의례적 지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4월 8일 석가의 탄일을 축하하는 본격적인 불교의례로 발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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