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현상이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길흉화복의 양면을 나타내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는 5행설은 자연현상에서 흉화를 나타내는 구징과 대비하여 또 한편으로는 吉福을 나타내는 祥瑞가 나타나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서경≫홍범편에 의하면 풍우·수한 등 자연계의 부조를 나타내는 구징에 대하여 이러한 자연현상이 순조롭게 나타나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庶徵이 있으나 이것이 곧 상서로 해석되지는 않았다. 상서의 출현은 특이한 현상에서 이를 풀이하고 있었다. 즉 당시 인류가 이상으로 하는 성군 명주에 의한 덕치의 실현을 바라는데서 온 것이었다. 성군의 출현과 함께 상서가 수반된다는 상서설의 기원은 멀리 전국시대에 거슬러 올라가지만 秦을 거쳐 前漢 초기에 와서야 구체적으로 적용되었다.≪史記≫孟子荀卿傳에 있는 鄒衍의 설과≪呂氏春秋≫名類篇의 기사로 미루어, 늦어도 전국 말기에는 왕실이 일어날 때나 聖天子가 출현하였을 때에는 상서가 나타난다고 하는 사상이 있었다고 추측된다.≪荀子≫哀公篇에는 정치가 삶을 사랑하고 죽임을 수치스럽게 여기게 하면 봉황새가 줄지어 나무에 앉고 기린이 郊野에 노닌다고 하여, 仁君의 치세에는 鳳麟이 나타난다고 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한대에 와서 晁錯·董仲舒·公孫弘 등에 의해 상서설로 그 진면목을 나타나게 되었다.
고려시대 상서설의 수용 실태를≪고려사≫오행지의 순서에 따라 살펴보기로 한다.
오행의 첫번째「水」에 속하는 상서로서 광종 9년(958) 5월에 玄鶴이 含德殿에 모여 있었다는 기사가 있는데, 그 날은 과거제가 설치된 뒤 崔暹 등에게 급제를 내리던 때이므로, 아마도 현학은 과거의 경사와 관련된 것이라 보인다.
다음 오행의 두번째「火」에 속한 것으로서는 태조 원년(918) 6월에 一吉粲能允의 家園에 瑞芝가 ‘一本九莖三秀’가 된 것을 왕에게 헌상하여 內倉穀을 내렸다는 기사가 있다. 그리고 문종 16년(1062) 5월에 朱草가 重光殿에 叢生하여 왕은 詞臣에게 시를 짓도록 명령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芝草와 朱草의 발생이 서상으로 파악되고 있음은 이미 기록으로 알 수 있거니와 주초에 관해서는≪宋書≫符瑞志 下에서는 “王者慈仁則生”이라 하여 인자한 임금의 덕으로 해서 나타나는 상서로서 생각되고 있었다. 그리고 주초에 대해서는 역시 동 부서지 하에 “朱草 草之精也 世有聖人之德生”이라고 해서 성인의 덕이 나타날 때에 자란다고 하였다. 위의 두 瑞草가 하나는 고려 태조의 개국을 찬탄한 서상으로, 하나는 문종조의 덕치를 상징한 해석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5행의 세번째「木」에 관한 것으로 木連理가 있다. 목의 연리란 두 개의 다른 나무가 가지에서 서로 엉겨붙은 현상을 말한다. 이에 대해≪송서≫부서지 하에서는 “王者德澤純洽 八方合爲一則生”이라 하여 왕자의 덕치가 純洽하여 사방이 조화롭게 잘 통치될 때에 나타난다고 한 것이다.≪고려사≫오행지 2에 보면 광종과 성종대에 개성과 충주에서 각기 木連理 현상이 나타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5행의「金」에 속한 상서로서, 白雉·白鵲·白獐·白雲·瑞氣 등이 보인다. 백치에 대해서는≪송서≫부서지에 周公 때에 백치와 상아를 바친 일이 있다고 하였으므로, 이상적 군주의 출현을 표상한 것으로 보인다. 백장에 대해서는 역시 같은 부서지에 “白獐 王者刑罰理則至”라고 하듯이 刑政이 정상으로 구현될 때에 나타나는 서상이라고 보겠다.
다음 5행의「土」에 관한 서상으로서 瑞麥·瑞忝·嘉禾 등이 있다. 서맥에 대해서는 예종 때에 尙州에서 2건, 우왕 때 晋州에서 1건이 보고되었고,≪고려사≫오행지의 끝에 보이는 성종 때의 “稻穗長七寸 忝穗長一尺四寸”, 숙종 때의 “稻一種再熟”, 공민왕 때의 “金庾獻十節稻” 등이 가화에 속한 것이라 믿어진다. 가화란≪송서≫부서지에 “嘉禾五穀之長 王者盛德則二苗共秀”라 하였듯이 왕자의 성덕이 나타날 때의 표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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