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1. 몽고 침입에 대한 항쟁
  • 3) 몽고의 침략에 대한 항전
  • (1) 살례탑군에 대한 항전
  • 가. 철주민의 항전

가. 철주민의 항전

 몽고의 내침으로 최초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은 鐵州였다. 철주(평북 철산)는 압록강을 넘어 남하하는 적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요지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철주성의 전투에 대해서는≪고려사≫세가, 고종 18년 8월 임오일에“몽고 원수 살례탑이 咸新鎭(義州)을 포위하고 철주를 도륙하였다”고 간략히 기재되어 있다. 위의 기록은 몽고군의 고려 내침을 알리는 최초의 기사이다. 몽고가 다시 철주에 이른 것은 대략 8월 중순의 일이었던 것 같다.261) 山口修,<蒙古と高麗(1231) ―蒙古の第一次高麗侵攻―>(≪聖心女子大學論叢≫40, 1972). 철주에 당도한 몽고군은 포로가 된 고려의 지휘관들을 내세워 철주성의 항복을 설득하려 하였으나 철주민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몽고병은 전력을 다해 철주성에 맹공을 퍼부었고 양군의 공방전은 보름 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결국 철주성은 몽고군에 의해 처참히 함락되었다.≪고려사≫의 기록에서는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몽고병이 성의 공격을 매우 급하게 하고 성중에는 양식이 다하여 능히 지키지 못하여 곧 함락될 지경이었다. 판관 李希績이 성안의 부녀와 어린아이를 모아 창고에 넣어 불을 지르고 장정들과 함께 자결하였다”고 그 상황을 전하고 있다.

 철주전투가 매우 인상적이었음은 金坵의 시<過鐵州>에서 생생히 묘사되고 있다.262) 金坵,≪止浦集≫권 1. 몽고군이 갑자기 철주를 공격하자 백성들은 방어사 李元禎, 판관 이희적의 지휘하에 철주성에 들어가 보름 동안 저항하였으나 식량이 다하고 또한 구원의 길이 보이지 않자 스스로 처자들을 죽이고 자결하였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