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1. 몽고 침입에 대한 항쟁
  • 3) 몽고의 침략에 대한 항전
  • (2) 당고군에 대한 항전
  • 다. 충청 서부지역민의 항전

다. 충청 서부지역민의 항전

 고종 23년(1236) 8∼9월 죽주성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때 몽고군의 일부 부대는 전라도 지경을 향하여 남하하는 과정에서 충청지역에 진출하였다.

 충청 서북(충남 북부)지역에 몽고군이 처음 들어온 것은 8월 하순의 일이다. 고종 23년 8월 몽고군 100여 명이 온수군(온양)으로부터 車縣峴으로 남하한 사실과 함께 이어 다음날 몽고군이 南京·平澤·牙州·河陽倉에 주둔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차현현으로 향한 몽고군 100여 명은 척후기병이고 본군은 부대를 나누어 그 일부가 다음날 충청 서북지역에 진입하게 되었던 것이다.

 몽고군이 대거 충남지역에 진주해 온 직후 각 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졌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온수군과 대흥군(예산)에서는 향리 또는 수령의 지휘를 받은 주민들이 침략군을 크게 물리쳤다. 곧 9월, 온양이 몽고군에게 포위 당하자 군리 玄呂의 지휘로 군민들은 성문을 열고 나가 싸워 적 200여 명을 사살하고 많은 무기를 노획하였으며, 이어 12월에는 대흥에서도 적과 싸워 대패시키고 병기를 노획하였다. 고종 23년 하반기에 벌어진 이러한 전투는 이 무렵 충청 서북지역에서 침략군에 대한 저항이 강력하였다는 사실을 전해준다. 게다가 이들의 승리가 수령 혹은 향리에 의해 지휘된 주민들의 공헌이었던 점이 주목된다.268) 尹龍爀,<13세기 몽고의 침략에 대한 호서지방민의 항전―고려 대몽항전의 지역별 검토(1)―>(≪湖西文化硏究≫4, 1984).

 고종 23년 하반기 충청 서부지역에 침입하였던 몽고군은 전라도 북부지역까지 남진하였다. 이들 몽고군은 곡창지대를 횡행하였는 바, 특히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이 지역에 대한 구략을 일삼았으리라 생각된다. 따라서 몽고군은 현지 주민들의 습격을 받곤 하였다. 같은 해 10월에는 醫業擧人 全公烈이 지휘하는 扶寧(전북부안)의 별초군이 高闌寺의 산길에 복병하여 몽고군 20여 기를 기습하여 2인을 죽이고 병기와 말 20여 필을 빼앗았다. 부안지방에서와 같은 현지민들에 의한 유격전은 다른 곳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났을 것이지만 전투의 성격상 기록에 남겨지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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