開港場 설치와 浦所 제한의 목적은 興利船을 통제하고 使送貿易을 규제하기 위해서이다. 국초에는 왜구 회유책의 일환으로 평화적인 통교자에 대해서는 남해안 지역의 어느 포소에서든지 자유로이 무역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조선측에 경제적 부담과 군사적 위협요인이 되자 태종 7년(1407) 興利倭人의 개항장을 富山浦·乃而浦의 2개 항으로 한정하였고, 이후 세종 8년(1426)에 鹽浦를 추가하여 3개 항을 개방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3포로서 각기 倭館을 설치하였으며, 서울에는 東平館을 두었다. 이후 포소는 다소 변경이 있기도 했지만 3포왜관은 일본인 도항자들의 渡泊處·接待處·貿易處로서의 구실을 하였으며 중종 5년(1510) 삼포왜란 때까지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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