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 불교
  • 3) 왕실의 불교숭신과 불교행사
  • (1) 숭불의 왕과 그 불사
  • 나. 세종의 신불과 불전·찬불곡 간행

나. 세종의 신불과 불전·찬불곡 간행

 세종은 7宗이던 교단을 선·교의 양종으로 폐합하고, 전국에 36寺와 3,770명의 승려만을 남게 하여 오히려 그 부왕보다 더 심한 억불책을 시행했다. 그러면서도 원년(1419)에 老上王 정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 興德寺·興福寺·興天寺·藏義寺·津寬寺·開慶寺 등에서 7齋를 베풀었다.643)≪世宗實錄≫권 5, 세종 원년 10월 경진·11월 을묘. 또 모후의 병환에는 개경사에서 觀音祈禱와 반승 및 藥師祈禱를 행하게 하였고, 왕은 친히 개경사에 행하여 藥師精勤의 불공을 행하고 반승하였다.644)≪世宗實錄≫권 8, 세종 2년 5월 병신 및 6월 무술·계묘. 그 모후의 사후에는 흥덕사·흥복사·大慈庵·흥천사·개경사·회암사 등에서 7재를 베푸는 등, 종래 왕실의 관례적인 設齋, 法席 등의 불사를 행하였다.

 그러나 세종은 해마다 두 번에 걸쳐서 행해지던 都城經行을 폐지하고, 성밖 승려의 도성안 출입과 연소자의 출가를 금하는 등 배불책을 늦추지 않았다. 그러한 세종도 중년 이후로는 경전을 가까이 하고 불사를 일으켰다. 조신과 유신들 및 成均館 학생들의 거센 반대가 있었으나, 세종은 그 말년에 더욱 불교에 심취하여 대궐 안에 불당을 세웠으며,645)≪世宗實錄≫권 121, 세종 30년 7월 신축·31년 정월 기해. 또 佛傳인≪釋譜詳節≫을 편찬하게 하고 스스로도 讚佛의 歌頌≪月印千江之曲≫을 지었다. 즉 세종은 28년에 왕비(昭憲王后)가 세상을 떠나자 그 명복을 빌기 위해 둘째 아들 首陽大君을 시켜서 불전을 편찬하게 하였으므로, 수양이 金守溫 등의 도움을 받아 梁僧祐의≪釋迦譜≫와 唐 道宣의≪釋迦氏譜≫를 중심으로 여러 경전들을 참고하여 훈민정음으로 大佛陀傳을 편찬하여 29년(1447) 7월에 완성한 것이 곧≪석보상절≫24권이다.646)≪釋譜詳節≫은 세종 29년 銅鑄字로 간행되었다. 세조 5년(1459)에는≪月印千江之曲≫과 합책하여≪月印釋譜≫로 만들었다.≪석보상절≫은 24권 중 현재 8권 쯤이 전해지고 있으며,≪월인석보≫는 15권 쯤이 현존한다. 그리고≪석보상절≫이 완성되자 세종이 이를 보고 불덕을 찬송하여 3권의 책으로 간행한 것이≪월인천강지곡≫이다.647)≪月印千江之曲≫은 上·中·下 3권이었으나 현재 상권만이 남아 있으며,≪月印釋譜≫의 23권에 제500∼519章이 수록되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모두 550장이 넘었던 것으로 보인다. 초간본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당시 배불시대의 왕으로서 불타의 전기를 훈민정음으로 집성하고 장편의 서사시로 불덕을 읊어 우리글로 엮어서 간행하였다는 것은 문화사적으로도 의의가 큰 불사였다고 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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