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Ⅴ. 갑신정변
  • 3. 갑신정변의 전개
  • 3) 개화정권의 수립
  • (3) 개화파 신정부의 혁신정강 공포
  • 다. 내각제도의 수립과 정부조직의 개편

다. 내각제도의 수립과 정부조직의 개편

갑신정변의 혁신정강 제13조 ‘대신과 참찬은 합문 안의 의정부에서 매일 회의를 하여 정사를 결정한 후 왕에게 품한 다음 정령을 공포해서 정사를 집행할 것’과, 제14조 ‘정부는 六曹 외에 무릇 불필요한 관청에 속하는 것은 모두 폐지하고 대신과 참찬으로 하여금 토의하여 처리케 할 것’과, 제4조 ‘內侍府를 폐지하고 그 중에서 재능있는 자가 있으면 등용할 것’ 등의 조항은, ① 내각제도의 수립, ②정부조직의 개편 등의 정책 대강을 공포한 것이었다.

이 중에서 먼저 주목할 것은 전제군주제에 일정한 제한을 가하고 각료들의 내각회의에서 정책을 의결하여 국왕의 재가를 받은 후에 정령을 공포하여 정사를 집행하는 내각제도를 수립하려 했다는 사실이다. 즉 ① 종래의 전제군주제에서와 같이 어전회의에서 정사를 논의하여 국왕이 정책을 결정해서 대신들은 어명을 받아 정사를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국왕의 참석 없이 의정부에서 대신과 참찬들이 매일 일과로서 각료회의(대신·참찬회의)를 개최하고, ② 이 회의에서 정책을 토의하여 정책과 정사를 결정한 후 다음에 국왕에게 품하여 재가를 얻으며, ③ 육조 이외의 종래 국왕에게 정사를 품하던 기관과 불필요한 기관은 모두 폐지함으로써 육조의 ‘대신·참찬회의’(내각회의)에서만 모든 정책·정사를 토의·결정하도록 했고, ④ ‘대신·참찬회의’에서 결정된 안건은 국왕의 재가 후에 ‘정령’으로써 집행케 한다는 것 등이다.

이렇게 되면 모든 입법과 행정의 토의결정은 국왕에 의해서가 아니라 6조의 대신·참찬회의(내각회의)에서 이루어지고, 국왕의 권한은 극도로 제한되어 대신·참찬회의에서 결정하여 품계한 사항에 대해 가부의 재결만 하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실제로 모든 정책의 토의와 결정이 대신·참찬회의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국왕은 대신·참찬회의의 결정사항에 동의하는 재결을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화하면, 종래의 전제군주권에 근본적 제한을 가하고 입헌군주제의 초기형태인, 입법권과 행정권을 가진 ‘내각제도’를 시행하려고 한 것이었다. 갑신정변의 혁신정강에서 이러한 내각제도의 수립은,≪한성순보≫의 논설과 같은 다른 자료들과 함께 볼 때, 갑신정변을 일으킨 개화당들이 종래의 전제군주제를 입헌군주제로 개혁하는 과정의 정책과 제도개혁을 추진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879)≪漢城旬報≫10호, 1884년 1월 3일,<歐米立憲政體>.

또한 갑신정변의 혁신정강 중 위의 여러 조항들은 정부조직의 근대적 개편도 선언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개편의 방향은, ① 정부의 부서는 6부로 하고, ② 6부 이외의 모든 행정상 불필요한 부서들(특히 왕족·척족과 벌열들을 위해 설치한 관직)은 모두 폐지하며, ③ 내시부와 같은 전근대적 부서와 환관제도는 폐지하고 그에 속한 자들 중에서 특히 우수한 자만 다른 부서에 임용하며, ④ 왕실사무와 국가행정사무를 엄격히 구분하는 것이었다.

갑신정변의 혁신정강이 선언한 내각제도의 수립과 정부조직의 근대적 개편은 한국역사에서 처음으로 전제군주제를 입헌군주제의 방향으로 개혁하여 내각제도의 수립을 결정한 획기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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