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신문≫은 1898년 8월 10일자로 창간되어 1910년 3월 31일자까지 10년 넘게 발간되었던 순 국문신문이었다. 제호를≪뎨국신문≫이라고 하다가 1903년 7월부터≪帝國新聞≫이라고 고쳤다.≪황성신문≫이 국한문체로 발행되어 양반이나 유림층을 대상으로 발행하였던 것과는 달리,≪제국신문≫은 순 국문으로 하층민과 부녀자를 주된 독자층으로 삼고 있었다. 따라서 한말에는 흔히 이 신문을 ‘암(雌)신문’,≪황성신문≫을 ‘숫(雄)신문’으로 불렀다고 한다.≪제국신문≫은 1898년 8월 3일에 농상공부로 신문 창간의 청원서를 제출하였는데, 국가의 개명을 도모하기 위하여 신문을 발간한다고 밝히고 있었다.041)≪光武二年訴狀及題存檔≫(郵政博物館 소장).
이 신문은 李鍾一·柳永錫·李承晩 등과 以文社라는 인쇄소의 관여자들이 발행하였는데, 창간 직후부터 이종일이 신문을 전담해야만 하였다. 옥중에 있던 이승만이 1901년부터 1903년까지 27개월 동안 논설을 집필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1899년 12월 화재로 인쇄시설이 전소된 이후 그 재정상태가 매우 어려워, 결국 1903년 1월부터 군부 代辦砲兵局長 崔岡이 사장에 취임하여 신문사를 일신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 해 6월 최강이 일본에서 구입해 온 揚武艦의 수뢰사건에 연루되어 신문사에서 손을 떼자 다시 이종일이 신문사를 맡을 수밖에 없었다.
≪제국신문≫은 만성적인 재정적자뿐 아니라, 일제의 신문 사전검열에 걸려 10여 차례의 휴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1907년 5월≪대한매일신보≫의 국문판 간행에 맞서기 위하여 지면을 확장하고 鄭雲復·李海朝 등을 영입하여 새롭게 신문을 발간하였으나, 여기에서 야기된 재정난은 결국 9월 21일 폐간을 선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로 말미암아 사회 각처에서 기부금이 모집되어 10월 3일자로 속간할 수 있었는데, 그 결과 10년 가깝게 신문사의 운영을 맡았던 이종일이 사임하고 정운복이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정운복은 韓基準·鮮于叡(鮮于日) 등 관서지방 출신들을 중심으로 신문사를 운영하였으나 계속 재정부족으로 곤란을 받았다. 그 발행부수는 일시 4,000부에 이르기도 하였지만 2,000부를 겨우 넘기도 하였으며, 대체로 3,000부 내외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법률과 풍속개량에 의한 민지계발을 내세우고 창간된≪제국신문≫은 결국 그 목적은 국민계몽이었다. 따라서 국민에게 국문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하층민의 지식계발을 실천하였으며, 국가발전과 국권수호를 위하여 국민의 실력양성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당시 계몽론자들과 마찬가지로 신교육과 실업발달이 국권회복의 방편이라고 인식하였던 것이다. 이와 함께 국권회복을 위한 무장투쟁, 곧 의병투쟁에 비판적이었던 것 역시 계몽론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와 다르지 않았다.
1907년 정운복이 신문을 맡은 이후에도≪제국신문≫은 문명개화론적인 관심이 계속되어 오히려 그 이전보다 계몽적인 내용의 연재물이 훨씬 많아지기도 하였으나, 동시에 친일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그것은 정운복이 통감부의 기관지였던≪京城日報≫의 국문판 책임자 출신이었고, 선우예 또한 그 기자 출신이었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았다.042)또 1909년 12월 4일에 있은 一進會의 合邦請願聲明에 대하여 친일세력이 발간하는 신문을 제외하고는 격렬하게 일진회를 성토하였으나,≪제국신문≫은 아무런 논박이 없어 여론의 질책과 의심을 받았다. 또 정운복의 친일내각 입각설이 있었고,≪제국신문≫의 통감부 기관지 시도까지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제국신문≫은 결국 재정난으로 1910년 3월 31일자를 발행하고 4월 1일부터 휴간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후 신문의 재간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등은 한일합병이라는 정치적 이유로 1910년 8월 말에 폐간 또는 개제되었으나,≪제국신문≫은 그와는 달리 재정난으로 일찍 폐간되었던 것이다. 지령은 대략 3,240호 정도였을 것으로 짐작된다.043)이상≪帝國新聞≫에 관해서는 崔起榮,<≪帝國新聞≫의 刊行과 下層民 계몽>(≪大韓帝國時期 新聞硏究≫, 一潮閣, 199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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