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으로 온건개화론자들의 유교관을 이해하고, 그 특성으로서 척사론을 벗어난 개방적 의식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도학자 출신으로서 온건개화사상에로 전향하였던 인물들도 東道西器論의 틀을 지키고 있는 만큼, 도학전통의 유교관을 보여주고 있음을 본다. 여기서는 신기선·김윤식의 경우를 검토해 보겠다.
申箕善(陽園, 1851∼1909)은 유교의 보편적 원리와 당시대의 현실적 지식을 經과 緯로 엮어 교과서적인 유교입문서를 저술하려는 의도에 따라 1896년≪儒學經緯≫를 저술하였다. 그는 공자의 도를 인도로 확인하면서 기독교(耶蘇之敎)를 강하게 비판하는 전통적 신념을 밝혔다.105)申箕善,≪申箕善全集≫ 하, 儒學經緯(아세아문화사, 1981, 475∼477쪽). 그러나 신기선은 1908년 조선통감인 이토 히로부미의 재정지원을 받고 이완용이 조종하는데 따라 세운 친일유교단체인 大東學會의 회장이 되었다. 兪吉濬·金允植 등도 그에 동조하여 유교조직 활동을 벌이기도 한다. 이러한 친일적 성향의 사실에서 동도서기론의 중간적 입장을 지녔던 인물들의 한계를 확인할 수 있다.
金允植(雲養, 1835∼1922)은<敦化論>에서 “敎라는 것은 사람에게 善을 권하여 恒心을 지키게 하는 것이다”라고 ‘교’를 정의하고 있다. 바로 이 ‘교’의 정의가 그의 종교관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그는 곧 종교의 가장 기초적 공통성을 도덕성과 인격성에서 확인한 것이다. 여기서 그는 서양에서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고 있음을 주목하여 종교간의 갈등의 해소를 중시하고 종파주의를 반대하였다.106)金允植,≪金允植全集≫ 2, 敦化論(아세아문화사, 1980, 623∼625쪽). 그의 孔敎觀에서 정통주의 내지 종파주의를 깨뜨리고 보편주의를 추구하고 조화주의의 성격으로 나가는 변화의 중대한 자취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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