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寅植(東山, 1865∼1928)은 안동출신으로 영남의 정통 학맥을 이은 전형적인 영남도학자이었다. 그는 1895년 31세 때 을미의병에 참여하였다가 관군에게 쫓겨 사방으로 피신하다가, 1903년 서울에 올라와 당시에 애국계몽운동을 하던 柳瑾·장지연·신채호 등과 교류하였다. 그 때까지 보수적 도학자이었던 그는 성균관에 머물면서 신채호와 여러 날 신학과 구학의 문제를 토론하였으나 신학에 승복하지 않았다. 이 때 신채호로부터 양계초의≪음빙실문집≫을 빌려 며칠 동안 침잠하여 읽고 나서 홀연히 결심을 하고 머리를 깎으며 개화론자로 전환하였다. 머리를 깎으면서, 그는 “성리학(心性理氣)이 전날의 학술이라면, 자연과학(氣化聲光)은 오늘의 학설이요, 전통예복(峨冠法服)이 전날의 풍속이라면 서양복장(洋裝剃髮)은 오늘의 풍속이다”라 선언하여 서양문물의 수용을 시대적 과제로 확인하였다.
그는 일제의 침략으로 ‘4천년 神明의 종족이 서로 이끌고 남의 노예가 되어가는’ 국가의 멸망을 목도하면서,<太息錄>을 지어서 시대의 문제점을 통렬하게 성찰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제를 검토하고 있다. 유인식은<태식록>에서 우리 나라의 폐습을 구제하는 방법으로서 폐습의 원인을 먼저 성찰하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고, 조선왕조의 망국 원인은 기본적으로 정부와 유림의 부패에 있었던 것으로 진단하며, 민족의 당면문제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유림에 있음을 단정한다. 여기서 그는 공허한 이론을 숭상하는 경학가(도학자)의 폐단이 날로 깊어지게 되어 나라의 멸망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하여 도학파를 비판하고, 양명학의 심학파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주목하고 있다. 또한 도학의 정통주의적 입장에 따라 다른 사상을 이단과 邪說로 규정하여 배척하였던 학풍이 창조성을 결여한 것을 비판하며 학문과 신앙의 자유를 강조한다.
그는 20세기 이후의 시대를 진화의 원리와 민권주의 원칙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한다. 이 時宜에 따라 옛 질서를 혁신하고(革舊), 새로운 질서를 설립하는(維新) 것이 민족을 위한 계책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이 계책에 책임을 지는 선각자의 역할을 주목한다. 여기서 그는 이러한 선각자가 유림들 사이에서 나와야 할 것으로 요구한다. 이에 따라 그는 교육을 통한 젊은 인재의 배양이 중요함을 인식하고, 그 자신이 1907년 고향에서 協東學校를 세웠고, 李商在 등과 조선교육협회를 조직하기도 한다.
유인식은 1919년 양계초의 時務學堂<學記>를 참조하고 우리의 청년들이 배우는데 필요로 하는 과제를 선정하여 15조의<學範>을 제시하였다.116)유인식이<學範>에서 제시하고 있는 학문을 위한 방법과 과제의 15조목을 열거하면, 1. 立志 2. 養心 3. 倫理學 4. 公德心 5. 熱誠 6. 毅力 7. 涵畜 8. 治身 9. 讀書 10. 窮理 11. 學文 12. 合群 13. 經世 14. 理想 15. 宗敎思想이다. 그는 특히 15조(종교사상)에서 자신의 종교관과 유교관을 밝히고 있다. 곧 그는 공자를 “모든 성왕의 으뜸으로 만세토록 태평을 열어 주어 온 세상이 존숭한다”라 하고 공교를 ‘2천년 동안 국민정신의 정수’로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근세에 종파가 다원화하면서 유교는 침체되고 사상가나 명망있는 인물이 모두 기독교(邪敎)에서 나오는 현실을 인정한다. 그는 당시에 출현한 민족종교인 대종교와 천도교는 공교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라 본다. 그는 이처럼 유교가 쇠퇴하는 원인을, 다른 종교가 미신을 진실하고 정성스러운 신앙으로 이루는 반면에, 유교는 경학의 대가조차도 입으로만 외울 뿐이요 진실한 정성과 실질의 얻음이 없는데 있는 것으로 규정한다.
유인식은 구교의 혁명으로서 루터(Martin Luther)의 입지와 공교의 복원으로서 강유위의 입지를 제시하여 종교사상가를 주목한다. 또한 일본인 요시다(吉田松陰)의 격언을 소개하거나 서양의 지식인을 ‘西儒’라 일컫고 있는 사실은 그가 폐쇄적인 국수주의나 척사론의 배타적 태도가 아니라 개방적 자세를 보여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배타적 정통주의를 넘어 종교자유의 시대에서 유교와 서양종교 사이에 조화 가능성을 확인하는 매우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종교관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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