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Ⅲ. 3·1운동
  • 3. 3·1운동의 해외 확산
  • 1) 중국 만주
  • (1) 북간도의 시위운동
  • 다. 왕청현

다. 왕청현

 왕청현에서는 3월 26일 百草溝 商埠地에서 독립선언축하식이 열렸다. 사립학교 학생·단군교인·부인 및 일반 한인 1,200명이 모인 가운데 대왕청의 金錫九, 유수하의 桂活(일명 桂和), 하마탕의 具子益 등 3인의 연설이 있은 다음 상부지로 진입하려 하자 중국 관헌이 제지하였다. 왕청현공서 순경국장과 비서가 참석하여 순경국장이 격려연설을 하기도 하였다. 28일에는 羅子溝에서 具春善·張漢鳳 등이 지도하는 가운데 약 1,000명의 한인들이 참가하여 독립축하회가 열렸다. 이 지역 金東漢은 총기 200정과 장정 400명, 군자금 2십만 조를 모집하고, 시위운동에 관여한 주도 인물 10여 명이 5연발 軍銃을 구입하였다. 같은 날 綬芬大甸子에서도 2,000명의 시위가 있었다. 30일 屈道山에서 300명이 만세시위를 벌였다. 한편 동녕현 三岔溝에서는 17일 4,000명이 참가한 가운데 독립축하식이 개최되었다. 나자구와 삼차구 지역은 3·1운동을 계기로 무장독립운동의 거점으로 발전하였다.

 4월 들어 왕청현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잇달았다. 지역별 일시와 참여인원을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4월 16일 백초구 5,000명
石歭市 3,000명
小東溝 300명
19일 봉오동 3,000명
20일 春芳社 5,000명
27일 磊子溝 5,000명
29일 大坎子 2,0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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