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스크(Spask)에서는 3월 18일 약 500명의 한인들이 모여 선언서를 배부하고 시위운동을 전개했다. 일본군은 러시아 관헌을 원조하여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조선인 수 명이 이 과정에서 부상하였다.674)<獨立運動에 關한 件>(國外第五報), 朝憲機제148호(1919년 3월 19일)(國會圖書館,≪韓國民族運動史料≫3·1운동편 其3, 1979), 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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