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韓國民軍은 대한국민회 산하에 편성된 독립군단이다. 3·1운동 직후 결성된 대한국민회는 북간도 거의 전역에 걸쳐 지방조직이 정비되어 있던 대표적인 한인 민정기관이었다. 이와 같은 탄탄한 조직을 기반으로 대한국민회에서는 강력한 전력을 갖춘 대한국민군을 편성하고 항일전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국치 이후 북간도의 대표적인 한인단체였던 墾民會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킨 대한국민회는 본부를 연길현 春陽鄕 蛤蟆塘(하마탕)에 두고 그 밑에 동·서·남·북·중의 5개 지방회와 70여 개의 지회를 두었다. 회원의 대부분은 기독교 신자였으나 후에는 불교·천도교·孔敎會 계통의 인물도 가담하였다. 회장은 한때 馬晉이 선임되기도 하였으나 간민회 이래로 북간도 항일운동의 중심인물이었던 具春先이 맡았다.
安武가 인솔한 대한국민군은 일제 기록에 의하면 1920년 8월 현재 병력 약 450명에 소총 600정, 탄약 7천발, 권총 160정, 수류탄 120개 등의 무력을 보유했던 것으로 조사되어 있다.410)≪獨立軍團名簿≫, 68쪽.
대한국민군은 주로 홍범도가 거느리는 大韓獨立軍이나 崔振東(崔明錄)이 인솔하는 軍務都督府軍과의 공동작전을 통해 전과를 올렸으며, 청산리대첩이 임박한 1920년 가을에는 이들 두 군단과 차례로 통합을 이룩함으로써 전력의 극대화를 기할 수 있었다.411)愛國同志援護會 編,≪韓國獨立運動史≫(1956), 3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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