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대첩 가운데 마지막 전투인 古洞河谷전투는 10월 25일 밤부터 26일 새벽 사이에 벌어졌다. 일본군이 고동하곡으로 독립군을 추격해 오던 중 홍범도 휘하 독립군의 매복전에 걸려 참패를 당한 것이다. 고동하는 老嶺 동남쪽에서 발원해 화룡현 관내의 和龍鄕을 거쳐 안도현 경내로 들어가는 하천으로 송화강 수계에 속한다. 교전지점은 현재의 八家子林業局 관할하에 있는 古洞河林場 남쪽으로 10 Km 정도 떨어진 골짜기이다.485)허송암,<청산리전역에 대하여>(≪룡정3·13반일운동80돐기념문집≫, 연변인민출판사, 1999), 311쪽.
홍범도 독립군을 탐색하던 일본군은 25일 밤 고동하 골짜기에서 독립군의 흔적을 발견하고 심야에 이이노(飯野) 소좌가 이끄는 2개 소대를 앞세워 야습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홍범도 독립군은 일본군의 접근과 야습에 대비해 주변 각지에 매복해 있던 중이었다. 이와 같이 만반의 대비를 갖춘 상태였기 때문에 일본군이 돌격해 오자 독립군은 여러 방면에서 즉시 반격을 가해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45분간 계속된 전투 끝에 독립군은 일본군 2개 소대 가운데 100여 명을 사살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일제의 한 전투보고서에서도 이 전투 당시 “동쪽 하늘이 점차 밝아오자 (살았다는 안도감에서 일본군) 장졸들의 얼굴마다 기쁨이 나타났다”고 술회하였을 정도로 일본군이 참패를 당했던 것이다.486)愼鏞廈, 앞의 책, 494∼4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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