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2. 노동운동
  • 2) 노동조합의 조직
  • (1) 전국적 노동조합
  • 다. 조선노동연맹회

다. 조선노동연맹회

 1922년 10월 15일 노동공제회를 해체한 사회주의 계열의 윤덕병 일파는 그 다음날인 16일에 조선노동연맹회를 조직했다. 노동연맹회는 노동공제회에 비해 여러 가지 면에서 발전적 모습을 보여 주었다. 노동연맹회는 다음과 같은<강령>을 내걸었다.

<강 령>

 一. 오인은 사회역사의 필연적인 진화법칙에 따라 신사회 건설을 기도함.

 一. 오인은 공동의 力으로 생활을 개조하기 위하여 이에 관한 지식의 계발, 기술의 진보를 기도함.

 一. 오인은 현 사회의 계급적 의식에 의하여 일치단결을 기도함.

   (≪동아일보≫, 1922년 10월 21일).

 즉<강령>에는 막연하게나마 자본주의 제도를 부정하고 필연적으로 도래할 신사회 건설 투쟁과 이를 위한 계급적 단결을 주요 활동목적으로 삼았다. 노동연맹회는<선언문>에서 “만국의 노동자는 이미 분기하여 신사회 건설의 역군들이 되어 혹은 투쟁을 계속하고 혹은 개선을 노래하는데 다만 조선의 노동자는 현 사회의 질곡에서 超脫치 못할까. 아니다. 우리 조선의 노동자도 세계에 향하여 여사히 선언하노라. 조선의 노동자도 자유와 평등과 평화를 위하여 만국의 노동자와 단결하여 분투코저 하노라”402)≪동아일보≫, 1922년 10월 21일.라고 하여 프롤레타리아트 국제주의의 정신을 천명했다.<선언문>은 불합리한 자본주의 제도의 해독성과 일제하 조선 노동자계급의 참담한 생활형편을 폭로하고, 단결의 힘에 의한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열렬히 호소했다. 그러나 노동연맹회의<강령>과<선언문>에는 노동자계급의 당면한 요구들이 반영되어 있지 못했다. 즉 노동단체로서 응당 가져야 할 노동자계급의 구체적 생활상 요구들을 규정한<행동강령>을 가지지 못했다.403) 김인걸·강현욱, 앞의 책, 45쪽.

 노동연맹회는 조직형태와 구성에서도 조선노동공제회에 비하여 일보 진전했다. 노동공제회는 개별적인 노동자들과 함께 소작농민들을 적지 않게 망라했지만 노동연맹회는 노동자들만으로 조직된 직업별 노동조합들과 또는 지역적 합동노조(일부 소작농민 포함)들로 결성된 노동조합 연합체였다. 즉 ‘경성인쇄직공친목회’·‘경성전차종업원회’·‘경성양복기공조합’·‘반도고무직공조합’·‘경성양화직공조합’·‘경성노우회’·‘이발조합’·‘대구노동공제회’·‘진주노동공제회’·‘감포노동공제회’·‘청진노동공제회’ 등이 창립 당시에 가맹한 단체였다. 노동연맹회에는 자유노동자들을 비롯한 적지 않은 공장노동자들과 그리고 약간의 소작농민 등 2만여 명이 참가했다.404) 김흥수, 앞의 글, 261쪽.

 노동연맹회는 전국적 노동단체로서는 최초로 5·1절(May Day) 기념투쟁을 조직했고, 나아가서 노동자들의 파업투쟁과의 결합을 시도했다.405) 김인걸·강현욱, 앞의 책, 45쪽. 1923년 노동연맹회와 그 가맹단체들은 5·1절을 기념하는 파업시위 및 연설회 기타 각종 행사들을 조직했다. 노동연맹회가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에 영향을 준 대표적인 사례는 1923년 7월 서울 양말직공 파업, 8월 평양 양말직공 파업에 대한 노동연맹회의 지원이었다. 노동연맹회는 실천적인 투쟁을 통하여 노동자들이 조직의 위력과 단결에 관한 사상을 획득하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406) 김인걸·강현욱, 위의 책, 46·48∼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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