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4. 형평운동
  • 4) 형평사의 조직
  • (4) 하위단체의 조직과 활동
  • 다. 형평학우회

다. 형평학우회

 衡平學友會는 경성에 유학하고 있던 백정학생들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단체로 조직되었다.

 형평학우회는 경성의 혁신동맹측과 진주본사와의 파벌 대립이 진정되어 1925년 4월 24·25일의 제3회 전국대회에서 조선형평사중앙총본부로 합동된 직후인 5월부터 그 조직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져 6월 13일에 경성에서 창립되었다.

 그리고 8월에 들어가 대전에서 衡平學友大會(全朝鮮衡平學友會)를 열어 강령 등 구체적인 활동 방침을 정하였다. 본부를 경성에 두기로 하고, 6부로 나누어 사원의 자녀 교육에 종사하기로 하였으며, 勸學團을 조직하여 각지를 순회하였다. 그리고 “①우리는 교육에 노력하여 실생활의 기본적 정신을 배양함, ②우리는 상호친목을 꾀하며 형평사의 목적을 실행할 것을 기함”이라는 강령을 제정하였다.606)≪동아일보≫, 1925년 8월 8·12일.
≪조선일보≫, 1925년 7월 11일.

 형평사의 창립이 백정에 대한 교육차별이 그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듯이, 교육문제는 형평사원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따라서 교육을 통해 실생활에 직접 도움을 주며, 회원들의 상호 친목을 통하여 형평사의 목적을 실천한다는 이들의 움직임은 각 지역의 형평사원으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총본부나 여러 분사의 지원이나 기대에도 불구하고 형평학우회의 활동은 그다지 활발했던 것 같지는 않다. 단지 형평사원 학생들간의 친목단체로서의 역할로 그 명맥을 유지했던 것 같다.

 이러한 형평학우회의 전반적인 활동의 부진은, 그 회원이 학생사원으로 구성되어 있어 활동시간이 제한되어 있었고 활동공간 또한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에 방학기간을 제외하고는 한데 모여 활동을 펼 수 없었던 것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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