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 청년운동
  • 3) 조선청년총동맹과 청년운동의 조직적 진출
  • (2) 조선청년총동맹의 결성과 ‘무산계급 청년단체’의 확산
  • 다. 무산계급 청년단체의 확산

다. 무산계급 청년단체의 확산

 청총 결성 이후 ‘무산계급’ 의식에 기초한 청년단체가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무산계급 청년단체는 민중해방운동에 기초한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을 지향했다. 1924년 9월 仁川의 漢勇靑年會가 새로 거듭나려함을 보고 高逸이란 청년운동가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민족적으로 생명을 잃은 조선의 무산청년은 혁명적 의기로 시대적 진리인 사회주의 깃발 아래에서 무산청년해방운동자가 되라”고 주장했다.680) 고 일,<한용청년회의 중흥을 듣고>(≪시대일보≫, 1924년 9월 17일). 이것은 당시 지방 청년단체에 불기 시작한 청년운동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였다. 서울의 신흥청년동맹과 서울청년회는 노골적으로 “공산주의 청년 및 무산청년의 단결로 특정계급에 대항하자”, “공산주의를 실현하자”고 주장했다.681)≪시대일보≫, 1924년 10월 8·15일. 대구의 第四靑年會는<공산당선언>을 연구하기 위한 정기강좌를 계획하기도 했다.682)≪시대일보≫, 1925년 1월 11일.

 1925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1926년 후반까지 전국적으로 60개가 넘는 군·부 지역에 청년단체 연합기관으로 군·부청년연맹체가 결성되었다. 전국 각도에 道 청년연맹이 설립되었거나 준비상태에 있었다. 경남과 함남의 경우 군·부의 50%가 넘는 곳에 청년연맹이 결성되었으며, 경북과 전남·함북은 40% 이상의 조직률을 보이고 있었다.683) 박혜란·안건호,<1920년대 중후반 청년운동과 조선청년총동맹>(한국역사연구회 근현대청년운동사연구반 편, 앞의 책), 101쪽.

 1925년 후반부터는 형평청년회를 비롯하여 양복·양화·인쇄·운수·점원청년회 등의 직업별 노동청년단체가 곳곳에서 조직되었다. 서울과 평양·부산·대구·광주 등의 도시에는 인쇄직공청년회가 조직되었으며, 담양과 목포·원산·인천·진주 등의 도시에는 노동자를 망라한 노동청년회가 조직되었다. 점차 지식계급 청년 중심의 청년운동에서 노동청년과 농민청년을 중심으로 한 청년운동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