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Ⅲ. 국학 연구
  • 1. 국어학
  • 1) 국어연구 단체의 조직과 국어연구
  • (1) 국어연구 단체
  • 나. 조선어학연구회

나. 조선어학연구회

 朝鮮語學硏究會는 1931년 12월 10일, 국문 記寫法에 관한 朴勝彬의 주장을 지지하는 인사들이 啓明俱樂部를 중심으로 조직한 국어연구단체였다. 이 조직은 조선어학회의 활동에 대한 대립적 성격을 띠고 있다. 그 규칙에 목적을 ‘朝鮮語學의 연구와 記寫法의 정리’(2조)에 있음을 명기하고 있었음이 바로 그것을 알려준다. 1932년 9월에 발표된<朝鮮語學硏究會趣旨書>에는 “言文의 정리와 통일은 現下 조선민중이 일반적으로 절실히 요구하는 한 사항”이라고 밝히고, “한글파 학설이 과연 민중의 요구에 應할만큼 얼마나의 학술적 가치가 있는가?”라고 밝혀, 조선어학연구회의 방향이 무엇인가를 드러냈다.

 조선어학회가 1933년 10월<한글마춤법통일안>을 확정·발표하자 조선어학연구회에서는 박승빈의 학설을 중심으로 조선어학회의 주장에 반대하기 위하여 1934년 2월 기관지≪正音≫을 발행하였다. 그 해 6월에는 ‘朝鮮文 記寫整理 期成會’를 조직하고, 7월에는 ‘한글式 新綴字法 반대 성명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움직임은 국어운동에 장애가 되는 점이 없지 않았으나, 조선어학회가 제정한 표기법에 대하여 학술적으로 반박한 것이었다. 즉 조선어학연구회나 조선어학회나 원칙적으로는 국어의 정리와 통일을 목적으로 삼고 있었던 것으로, 일면 국어연구의 수준을 향상시킨 부분도 적지 않았다. 다만 그 이론이 박승빈 개인의 학설에 의지하는 수준이었고, 참여 인사 자체가 국어연구자들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일반의 호응을 별로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어학연구회에서는 기관지≪正音≫을 1941년 4월까지 총 37호를 발간하여 국어연구의 기반을 조성하였으며, 발간되지는 못하였으나 朝鮮光文會에서 주시경·권덕규·이규영 등이 편찬하던≪朝鮮語辭典≫의 원고를 계명구락부에 이관하여 진행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조선어학연구회 역시 국어연구와 민족문화 수호에 일정하게 공헌하였다고 할 것이다.111)金允經, 위의 책, 567∼614쪽.
朴炳采, 위의 글, 455∼459쪽.
趙東杰,<1930·1940년대의 國學과 民族主義>(≪韓國近現代史의 理解와 論理≫, 지식산업사, 1998), 166∼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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