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2. 미군정기의 경제
  • 3) 공업생산의 소장과 귀속사업체 처리
  • (2) 귀속재산의 처리와 자본의 재편
  • 나. 귀속사업체의 관리와 불하

나. 귀속사업체의 관리와 불하

 미군정은 재산관리처를 설치하여 귀속재산을 관할케 했는데 직접적인 지휘·감독은 재산의 종류에 따라 달라서 귀속사업체는 상무부 소속이었다. 그리고 미군정은 앞에서 본 법령과 같은 과정을 거쳐 접수한 귀속사업체에 대해 관리인을 임명하여 제일선에서 사업체를 관리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어떤 부류의 인물이 관리인으로 임명되었으며 그들이 어떻게 활동했는가가 바로 한국인 자본가 형성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군정당국의 관리인 선정과정을 보면 시기에 따라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주로 해당지역 자산가의 영향력이 컸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그들은 일본인공장대책위원회나 재산관리이사회 따위의 명칭을 갖는 단체를 결성하여 미군정의 관리인 선정에 크게 개입했던 것이다. 적산기업체를 둘러싸고 관리권을 획득하려는 자산가들과 노동자자치관리위원회의 충돌이 잦았던 해방 직후 상황에서 미군정이 노동자 자주관리를 배제하고 관리인제도를 채택한 것은, 사실상 이 조선인 자산가계층이 기업체를 장악하는 데 필요한 법적·물리적 뒷받침을 제공해 준 셈이었다.

 한편 미군정하 관리인들의 출신을 조사해보면517)이에 대해선 김기원,≪미군정기의 경제구조≫(푸른산, 1990), 126∼133쪽 참조. 직원·주주·해당기업체 관련 상인·미군정 관리·상공업자·기술자·일제하 관리 등 다양한 분포를 보이고 있다. 이 중 직원에서 관리인이 된 것은 종업원자치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다가 군정당국에 의해 관리인으로 임명받은 경우나 조선인 사원으로서 관리인으로 임명받은 경우가 있지만 일반노무자 출신이 관리인이 될 수는 없었고 조선인 상급직원이라야 관리인이 될 수 있었다.

 주주출신 관리인들은 소액주주도 있었고 대주주도 있었는데 이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토대로 쉽사리 관리인으로 임명받을 수 있었다. 귀속기업체 중 조선인 출자회사의 비중이 약 1/4 정도였음을 감안할 때 주주출신 관리인들이 큰 비중을 점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보면 어떤 출신이 지배적이었는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체로 중소기업의 경우엔 직원과 같이 연고있는 인물들이 많았고 대기업의 경우엔 외부로부터 들어온 관리인들이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이들 중에 귀속기업체와 직접적인 연고가 있었던 부류는 직원·주주뿐이고 관련 상인들이 그나마 간접적인 연고가 있었을 뿐, 나머지 미군정 관리 등은 아무런 연고도 없었지만 자금력이나 정실 등에 의해 관리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식민지 수탈의 산물로서 조선민중 전체의 것이 되어야 할 적산기업체에 대해 이런 식으로 관리인이 임명되고 그들이 기업체를 장악해 간 것은 해방 이후 경제질서의 난맥상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친일세력 중 일부는 청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장하게 되고 이와 더불어 새롭게 친미세력이 형성되어 갔다.

 한편 관리인은 법적·형식적으로는 미군정에 귀속된 기업체의 운영을 위임받은 고용인에 지나지 않았다. 군정당국은 마음대로 관리인을 교체할 수 있었고, 이 때문에 이권이 큰 대기업체에선 관리인 교체가 자주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관리인들은 이러한 신분의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생산수단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자신의 의사대로 기업을 경영하는 자본가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불하시에는 관리인에게 우선권을 부여하였으므로 시간이 흐를수록 관리인은 소유자본가로서의 성격을 뚜렷이 해 갔던 셈이다. 1946년말 이래 기업체 임대차제도가 부분적으로 시행됨에 따라 관리인의 후신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임차인은 법률적으로도 기업경영권을 강력하게 장악한 존재로서 바로 관리인의 발전된 모습이었다.

 미군정에 의해 접수되고 관리인·임차인에 의해 운영되던 귀속사업체는 점차 불하되어 가기 시작하였다. 미국은 1946년 2월 미·소공동위원회에 즈음하여 일본인재산 중 농지·도시주택·소규모 사업체를 민간에 매각할 수 있도록 하는 방침을 시달하였는데,518)State-War-Navy Coordinating Committee, “Disposal of Japanese Property in Korea,” 1946년 2월 20일. 실제로 귀속재산 불하가 시작된 것은 1947년 7월경부터였다.519)단 쉽게 가치가 손상될 수 있는 동산은 이미 일찍부터 매각 처분되어 1947년에 가면 이미 그런 재산은 다 처분되고 남아 있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미군정기에 불하된 귀속재산의 규모는<표 10>과 같다. 이를 정부수립 이후의 전체 귀속재산 불하와 비교하면520)정부수립 이후의 귀속재산 불하 통계는 김기원, 앞의 책, 156∼159쪽 및 300∼305쪽 참조. 그 비중은 극히 미미하다.

  1945년 8월 15일∼1948년 10월 12일까지의 누계
종 류 사정 건수 불하 완료
진행중 완료 건수 금액(백만 원)
동 산
기업체
주 택
선 박
물 영¹
기 타
1,173
1,434
5,249
291
187
241
961
660
2,877
230
86
65
416
239
412
92
59
61
66
1,109
347
67
1,021
1
합 계 8,575 4,879 1,279 2,611

<표 10>미군정기의 귀속재산 불하

USAFIK, Republic of Korea Economic Summation, No.35, 1948. 9∼10, p.7.
 1. 물영은 물자영단이 매각한 일본군 재산을 의미함.

 더구나 미군정기의 기업체 불하는 미군정이 끝나갈 무렵에 집중되었다. 이는 미군정이 국제법적으로 귀속재산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확고한 방침을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또한 미군정이 자신의 통치기간 동안 귀속기업체를 통해 한국경제에 대한 자신의 지배력을 계속해서 행사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미군정기의 귀속기업체 중 규모가 크고 중요한 업체는 중앙에서 관할하였고 그렇지 않은 것은 지방에서 관할하였는데, 미군정기의 불하기업체 중 중앙직할 기업체는 극장·토건회사·백화점 등 공장이 아닌 사업체가 대부분이었고 지방관할 기업체로서 불하된 공장도 대개 소규모였다. 이렇게 볼 때 미군정기의 귀속사업체 불하는 그 양적인 비중에서보다도 한국정부 수립 이후 귀속기업체 불하의 원형을 마련했다는 데에 그 일차적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결국 미군정기 귀속사업체의 접수-관리-불하라는 일련의 과정은 남한의 경제체제를 자본주의로 재편성하는 8·15 이후 경제재편의 결정적인 기능을 수행한 것이었고, 이는 정부수립 이후의 불하로 최종적인 마무리가 지어졌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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