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2. 미군정기의 경제
  • 3) 공업생산의 소장과 귀속사업체 처리
  • (2) 귀속재산의 처리와 자본의 재편
  • 다. 미군정기 자본의 재편

다. 미군정기 자본의 재편

 일제 말 조선에서는 공업화=자본주의화가 빠른 속도로 진전되었고 그와 동시에 독점자본의 지배력도 강화되었다. 그러므로 한국의 자본주의는 8·15 이후에 백지상태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일제의 유산인 식민지적 자본주의화의 진전을 계승한 것이었다. 여기서 일제하의 자본주의와 해방 이후 자본주의를 매개·연결시킨 것이 전술한 귀속사업체였던 셈이니 이의 처리 방식이 미군정기 자본재편과정의 핵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군정에 의해 접수·관리된 귀속사업체는 미군정이라는 국가기구가 그것을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일단 국가자본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성격을 좀더 자세히 검토해 보자. 미군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이 국가자본의 성격이 부르주아적인 것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고 그 때문에 미군정은 ‘노동자자주관리운동’을 강력하게 부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일본제국주의 자본의 국유화라는 방식을 통해 국가자본이 성립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한국인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새로운 외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따라서 이는 외국자본의 국유화라고 할지라도 혁명적 성격을 갖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는 국가성립 초기에 민족부르주아지가 경제적으로 취약했기 때문에 위로부터 부르주아계급을 창출하여 자본주의 질서를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미군정이 취한 국유화조치의 이런 성격 때문에 좌익세력의 정치적 거세와 민간자본의 성장으로 어느 정도 자본주의 질서가 정비되자 미군정 및 그 뒤를 이은 한국정부는 이 국가자본들을 신속하게 민간에 불하하였다. 다시 말해 8·15 이후 한국인 민간부르주아지가 취약하고 좌익세력이 상대적으로 강력하게 발호하여 민간부르주아지 스스로 일제자본을 처리하거나 자본주의질서를 유지하기 곤란했던 일정 기간 동안 과도적으로 미군정이 위로부터 일제자본을 국가자본으로서 관리했던 것이다.

 그러면 미군정기의 귀속기업체는 어떤 자본운동 양태를 나타내었는가. 귀속기업체 중 지방관할업체는 대개 소규모로서 미군정기 후반기에 가면 그 중 상당수가 사실상의 사적 자본상태인 임대차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그렇지 않고 관리인체제하에 있었다 하더라도 미군정의 지휘·감독이 제대로 미치지는 않았다. 따라서 미군정이 적어도 중앙직할로 분류하여 꽤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업체들만이 그런대로 국가자본이라고 칭할 만한 상태였던 것이다.

운영형태 공장수 종업원수 1공장당 평균 종업원수
운영관리 중
임대차
불하
중앙직할
1,312²
322
26
82
36,532
5,470
364
46,194
27.8
17.0
14.0
563.3
1,742 88,560 50.8

<표 11>운영 형태별 적산공장¹

조선통신사,≪조선경제통계요람≫(1949), 79쪽.
 1. 1947년 12월 말 현재 상무부 생산위원회 조사임.
 2. ‘운영관리중’ 공장은 지방관할로서 임대되거나 불하되지 않은 공장임.

 중앙직할 기업체들은 원래 식민지시대 때 조선에 진출한 일본독점자본이었다. 이 기업들은<표 11>에서 보듯이 귀속공장 전체에 대한 공장 숫자에서는 4.7%이지만 종업원 수에서는 52%를 차지하고 있고 공장 평균 종업원수도 다른 공장들을 압도하고 있다. 반면에 노동생산성을 비교해 보면 일제하에선 독점대기업의 노동생산성이 다른 기업을 훨씬 능가했지만 해방 후에는<표 12>에서 보듯이 이런 공장들의 생산성이 크게 감퇴하여 사영공장에 못 미치고 있다.

 미군정기의 공업 위축에서 식민지적 종속의 정도 즉 일본인자본이나 일본인기술자의 비중이 큰 공장일수록, 또 미군정의 잘못된 정책의 영향을 크게 받을수록 생산 위축이 더 심하게 나타났으므로 귀속 대공장의 생산성이 상대적으로 더 부진한 것은 당연한 노릇이었다. 원래 독점자본이라고 하면 일차적으로 생산성의 우위를 바탕으로 독점이윤을 취득하는 것인데 미군정기의 귀속 대공장은 이와 같은 운영 부진으로 인해 독점이윤을 확보하지 못하고 독점자본으로서의 지배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던 것이다.

운영형태 공산액 1공장당 공산액 1노동자당 공산액
중앙직할
지방관리
私  營
11,636,925
6,790,732
34,219,483
63,590
10,627
11,460
308
266
505
52,647,140 13,825 402

<표 12>운영 형태별 공산액 (단위:천 圓)

조선은행 조사부,≪경제연감≫(1949),Ⅰ부-42∼43쪽.

 요컨대 미군정기 일본인자본의 재편은 중소 일본인자본의 경우엔 형식적으로는 국가자본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한국인 사적자본으로 전환되어 갔으며, 일제하에서 강화되어 가던 대규모 독점자본은 미군정기에 와선 운영이 부진해지고 독점자본으로서의 지위를 지키지 못하였다. 다만 이 대규모 공장들에게는 비교적 우수한 기계설비와 집중된 노동자가 있었으므로 장차 독점자본으로 복원될 잠재력은 존재하였다. 그리하여 이후 미국의 원조를 제공받는 등 종속구조를 재정립하고 정부수립 후 불하를 통해 사적자본으로 전환하면서 그 독점력을 조금씩 회복해 가는 것이다.

 한편, 귀속공장이 아닌 사영공장의 활동은 어떠했던가. 2차대전 말기 일제에 의해 강제로 통폐합되었던 중소 조선인공장들이 8·15 이후 다시 부활하였으며 일제의 억압이 사라진 속에서 상대적으로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고무공업과 같이 일제하에서 조선인의 기술이 축적되어 있고 소자본으로 용이하게 시작할 수 있는 분야에서는 중소공장들이 우후죽순처럼 설립되었다.

 이러한 중소공장 활성화는 8·15 이후 공업생산의 전반적 위축을 타개하고 생산을 회복시켜 간 주요 동력이었다. 이 중소공장들은 자체의 경쟁논리에 의해 다수가 몰락하기도 했지만 성장하여 새로운 독점자본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상과 같은 해방 이후 자본재편 과정에서 자본가의 내부 구성도 크게 변화하였다. 일본인 철수에 의해 자본가의 공백이 생김에 따라 많은 한국인들이 자본가로서 새롭게 부상하였다. 귀속기업체의 관리·불하과정에서 많은 한국인 상업자본가가 산업자본가로 전환하였으며 일제하에서 소규모 개인기업체를 경영하고 있던 기업주들이 자신의 기업보다 더 큰 일본인 기업체를 떠맡음으로써 자본의 확대를 도모할 수 있었다.

 과거 일제의 지배질서하에서 중간계층 또는 매판적 동맹자의 지위에 있던 조선인들이 8·15 이후 신흥지배계급으로 부상해 간 것이다. 반면에 일제 말에서 해방으로 이어지는 자본주의화 물결 속에서 그 흐름을 타지 못한 순수지주들은 몰락했으며, 일제 말 소규모 상업이나 금융업에라도 진출했던 지주들은 8·15 이후 보다 용이하게 본격적인 자본가로 발전하여 갔다. 또 오늘날 재벌들의 자본축적 역사를 보더라도 상당수의 재벌들이 미군정기에 주력기업을 창설하였으며 귀속재산 처리와 무역을 통해 축적기반을 확대해 갔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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