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사 이자현(李資玄)은 성격이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과거에 합격하고 대악서 승(大樂署丞)이 되었는데 갑자기 관직을 버리고 청평산(淸平山)에 들어가 소요하며 스스로 즐기고 있었다. 여러 번 불러도 이르지 않고 사양하며 말하기를, “새의 본성으로 새를 길러서 거의 종고(鐘鼓)의 근심이 없게 하고, 물고기를 관찰하면 물고기를 알 수 있듯이 강호(江湖)에서 노니는 성정을 온전하게 해 주옵소서.”라고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왕이 남경(南京)으로 행차하여 그의 아우 이자덕(李資德)을 보내 직접 편지를 써서 부르니, 이자현이 행재소에 와서 굳이 산으로 돌아가기를 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