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한국사Ⅶ 국가를 개방하다⑤ 일본이 조선을 강제 침략하다

나. 의로운 죽음을 선택하다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이 상실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민들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항거하기 시작하였다. 이완용, 박제순 등 매국노를 처단하기 위한 암살단이 활약하였고, 임금에게 부당함을 상소하기도 하였다. 시위 대장 민영환은 자결하여 항거하였고, 또다시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 일본군과 싸웠다.

민비 살해 사건과 을사조약 때의 의병에 이어, 고종 퇴위와 군대 해산을 계기로 또다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의병에는 해산된 군인도 합류하여, 부족한 무기를 가지고 위험을 무릅쓰고 싸웠다. 한 때는 서울 진격을 계획하여 깊이 침투하였으나, 결국 강력한 일본군에 패하여 물러갔다. 그 후 국내에서 싸우기 어려워지자 일부는 만주, 연해주 지방으로 이동하여 투쟁을 준비하였다. 개인적으로 투쟁한 사람도 있었다. 전명운과 장인환은 미국인 스티븐스(D. W. Stevens)가 일본의 침략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고 다니자,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역에서 그를 사살하여 미국을 놀라게 하였다.

인물탐구

안중근 의사

더 큰 의거는 안중근 의사가 이루어 냈다. 한국 침략을 주도하고 러시아와 협상을 하러 가던 일본 수상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 하얼빈 역에 하차하였다. 미리 이 사실을 알고, 안중근 의사는 총을 품고 역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수많은 사람과 군인이 애워싸고 있었다. 안 의사는 이토를 바로 알아보고, 그를 향해 총을 발사하여 쓰러뜨렸다 (1909). 이 사실은 전 세계에 알려져 세계인을 놀라게 하였다. 안 의사는 바로 체포되어 뤼순(랴오뚱 반도) 감옥에서 처형당하였다.
안중근 의사는 평소 애국심이 강하였고, 효도·인간애·교육열 등이 매우 높아 교육적으로 많은 사람의 모범이 되고 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몸이 아프다.’고 한 그의 가르침은 지금도 큰 교훈이 되고 있다. 오늘날 일본인들도 안 의사를 존경하고 있다.
‘견리사의 견위수명’- 안중근 의사의 교훈
(이익 앞에서는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험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안중근 의사
안중근의 손가락
안중근 기념관 앞 비(남산)
의병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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