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생의 임무와 특권
교생은 향교에서 공부하는 일 외에도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특히, 향교의 교육 기능이 약해지는 조선 중기 이후에는 교생이 해야 할 잡역(雜役)이 많았다. 우선 교생은 서로 순서를 정해 다른 교생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후에 향교에 남아서 문묘를 지키는 일을 해야 하였다. 그것을 ‘수직(守直)’이라 하였는데 대개는 향교의 노비들과 함께 하였고, 수직할 때에 화재나 도난 등 사고가 발생하면 근무를 태만하게 하였다고 벌을 받았다.
교생들이 해야 할 또 다른 일은 각종 제례를 보조하는 집사(執事)를 맡는 것이었다. 향교의 제례에는 봄가을의 석전제와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하는 삭망제(朔望祭)가 있었다. 그리고 향교를 수리하거나 옮길 때에는 문묘의 위패를 다른 곳에 옮길 때와 돌아올 때 제례를 지냈다. 각종 제례에는 수령이나 교임이 헌관(獻官)이 되어 주관하게 되는데, 교생들은 제례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하여 시중을 드는 집사 일을 담당해야 하였다.
그 밖에도 교생은 왕의 칙서(勅書)와 제례에 쓸 향축(香祝)을 보관하는 일도 하였다. 그리고 군현의 수령이 각종 장부를 옮겨 쓰는 일에 동원하기도 하였으며, 수령이 공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다른 곳으로 떠날 때는 수령의 군대 지휘권을 표시하는 병부(兵符)를 병영에 전달하는 임무를 맡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지역에 따라서 향교의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곳도 있었기 때문에 몇 안 되는 교생이 각종 잡역을 감당하지 못하여 도망하는 일도 있었다.
조선은 향교 교육을 진흥하기 위하여 교생들에게 여러 가지 특전을 주었다. 우선 교생들은 공부하는 데 필요한 수업료를 따로 내지 않았다. 향교 교육에 필요한 교육 시설과 숙식 시설, 교관의 봉급, 식량 등은 모두 국가에서 지급한 학전(學田)과 노비를 통하여 조달하였다. 교생들이 공부해야 할 서적도 중앙에서 인쇄하여 보급하거나, 지방 수령을 통해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교생들은 대부분 동재나 서재에 기숙하며 공부하였기 때문에 밤에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기름을 제공하여 주었다. 단지 교생들은 정해진 의관을 갖추어 입어야 했다. 흉년이 들어 학전에서 거두는 수입으로 향교의 교육비를 부담할 수 없을 때는 일정한 기간 방학을 하였다.
향교 교생이 누리는 특권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는 과거에 응시할 자격을 얻는 것이다. 『속대전』에는 원칙적으로 중앙에서는 사학에, 지방에서는 향교에 입학한 학생들에게만 과거에 응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114)
교생들은 생원·진사 시험의 초시를 면제받을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관찰사는 향교 교육을 권장하기 위하여 자기 지역의 교생들을 모아 경전을 시험하는 도회(都會)를 열었다. 이때 성적이 우수한 교생에게 생원·진사 시험의 회시에 곧바로 응시할 수 있는 특전을 준 것이다.
교관은 교생이 공부한 내용을 매일 시험한 뒤 그 성적을 기록하여 수령에게 알리고, 수령은 관찰사가 지역을 순회할 때 교생들의 성적을 보고하였다. 그러면 관찰사는 성적이 우수한 교생을 시험하여 호역(戶役)을 면제하여 주었다. 때로는 군현의 수령들이 교생을 동원하여 책을 베끼게 하거나 관아의 여러 가지 잡역을 시키는 경우가 있었다. 이러한 폐단을 막기 위하여 성종 때에는 수령들이 교생에게 잡역을 맡기는 것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리고 공부에만 전념하게 하였다.
교생의 가장 큰 특권은 군역을 면제 받는 것이었다. 국가에서는 중앙의 성균관, 사학과 더불어 향교의 교생도 학업 성취를 위하여 공부하는 동안은 군역을 면제하여 주었다. 관리들에게 군역을 면제하여 준 것처럼 관료로 진출하기 위하여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도 같은 특권을 준 것이다. 그런데 군역 면제 특권 때문에 공부하려는 마음이 없으면서도 군역을 피하기 위하여 향교에 입학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특히, 조선 중기 이후 경제적 능력이 있는 부유한 양인들이 수령이나 교관에게 부탁하여 자제들을 향교에 입학시키는 경우가 많아졌다. 결과적으로 군역을 담당할 사람이 부족해졌기 때문에 이것이 사회 문제로 크게 대두되었다. 국가에서는 교생의 학업을 수시로 시험하여 성적이 나쁜 교생은 군역에 충원하였지만, 조선 후기까지도 군역을 면제 받으려고 교생이 되는 양인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114) | 『증보문헌비고』 권207, 학교고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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