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2장 조선시대의 배움과 가르침3. 서원서원의 역할과 기능

교육 기능

조선의 교육 기관으로서 서원은 경전을 공부하고 논의하는 강학(講學)과 자아 단련을 통해 덕성을 함양하는 장수(藏修)를 두 축으로 강조하였다. 특히, 서원 건립 초창기인 16세기 후반에는 장수를 오히려 더 중요하게 여겼다. 서원 교육이 유생의 자율성과 자발성에 따라 한 사람의 사림으로서 완성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표> 시대별·지방별 서원 빈도 수
지방별
시대별
경기 충청 전라 경상 강원 황해 평안 함경
16세기 전반   1 1 2   1     5
16세기 후반 7
(2)
6 11
(2)
24
(8)
1 6
(3)
2 2
(1)
59
(16)
17세기 전반 4
(3)
12
(4)
14
(2)
34
(9)
4
(1)
3 3
(1)
3
(1)
77
(21)
17세기 후반 24
(21)
24
(17)
27
(19)
55
(28)
5
(3)
9
(11)
8
(8)
7
(4)
159
(111)
18세기 전반 4
(9)
14
(11)
12
(7)
41
(9)
1 1
(4)
3
(3)

(2)
76
(45)
18세기 후반     1
(1)

(2)
        1
(3)
19세기 전반 1
(1)
              1
(1)
19세기 후반      
(1)
       
(1)
40
(36)
57
(32)
66
(31)
156
(57)
11
(4)
20
(18)
16
(12)
12
(8)
378
(198)
*( )는 사액 서원 수.
*최완기, 『한국의 서원』, 대원사, 1991, 19쪽.

서원의 교육 형태는 유생들이 일정 시간 서원에 기숙(寄宿)하면서 공부 하고 교육받는 거접(巨接), 매달 두 차례 유생들이 모여 경전을 낭독하고 공부하는 강회(講會), 시 짓기 실력을 겨루는 순제(旬製), 백일장(白日場) 등이 있었다. 그러나 서원의 재정이 점차 악화되면서 유생의 거접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강회도 식량을 지참한 유생들을 대상으로 부정기적으로 열리는 지경에 이르면서 서원의 교육 기능은 점차 약화되었다. 이에 따라 사림의 질적 저하도 현저해졌다.

[필자] 임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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