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2장 조선시대의 배움과 가르침서당서당의 인적 구성

훈장

훈장은 서당 교육의 담당자로서 외부에서 초빙하기도 하고 마을이나 문중 사람이 맡기도 하였다. 이들은 대개 상급 교육 기관인 향교나 서원 출신 선비이며, 과거에 낙방한 선비도 있었고, 서당이 널리 퍼지면서 직업적인 훈장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서당>   
작자를 알 수 없는 서당 그림이다. 글방 안 학동들의 자유로운 모습과 매맞는 학동을 지켜보는 훈장의 모습에서 서당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각 서당에서는 당연히 학식이 높고 덕을 겸비한 훈장을 모시고 싶어하였으나, 이러한 선비는 관리로 진출하거나 향교나 서원에 우선 부임하므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따라서 서당 훈장들의 학식은 일정하지 않았으며, 경서를 바로 해독할 정도의 실력 있는 훈장은 드물었고 겨우 주석서를 참고하여 글의 뜻이나 해석하는 것이 고작인 경우가 많았다. 벽촌(僻村)의 훈장 가운데에는 한문 활용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심한 경우 도망자가 법망을 피하는 수단으로 벽촌의 훈장 노릇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훈장의 신분은 명문 사족에서부터 몰락한 양반, 중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으며, 조선 후기로 갈수록 몰락 양반 출신인 훈장이 늘어나면서 훈장의 지위는 점점 열악해졌다. 직업 훈장들은 대우가 좋은 곳을 찾아 길어야 1∼2년, 일반적으로 6개월 내지 1년 정도 떠돌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훈장에 대한 대우는 실력에 따라 달라졌다. 훈장의 실력에 따라 멀리서도 학생이 오는 경우가 있었고, 유능한 훈장은 극진히 존경하고 융숭하게 대접하였다. 훈장의 보수는 서당 재정에 따라 다른데, 대체로 가족의 식량과 땔감, 본인의 의복(후기에는 담배까지) 등을 지급하였다. 멀리서 초빙된 훈장은 가족과 떨어져 살았다. 이 외에 책 한 권을 마칠 경우 ‘책걸이’ 또는 ‘책씻이’라고 불리는 간소한 잔치를 베풀거나 계절에 따른 별식을 제공하였으며, 하과(夏課)라고 불리는 여름 계절 학습을 할 때에는 학부모들이 과외 수업료를 내기도 하였다.

[필자] 임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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