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교원 양성 과정
일제는 1911년에 조선 교육령을 발표하여 구한말의 사범학교령에 따른 교원 양성 제도를 폐지하였지만, 독립된 사범 교육 기관을 설치하지 않고 관립의 남녀 고등 보통학교에 사범과 또는 교원 속성과를 설치하였다. 1911년에 최초로 경성 고등 보통학교에 3개월 과정의 임시 교원 속성과를 설치하고, 1913년에는 1년 과정의 사범과를 부설하였다. 그 뒤 평양 고등 보통학교와 경성 여자 고등 보통학교에 각각 사범과를 설치하면서 어느 정도 교원 수급이 가능해지자 1914년에 교원 속성과를 폐지하였다.202)
이와는 별도로 한국인 보통학교 교원을 양성하기 위하여 1911년에 경성 고등 보통학교 부설 임시 교원 양성소를 설치하였다. 그렇지만 뒤에 한국인 보통학교 교원을 위한 제1부와 일본인 교원 양성을 위한 제2부로 분리하였다가 사범과를 통해 한국인 보통학교 교원 양성이 가능해지자 1916년부터 제2부만 존속시켰다.
1922년 제2차 조선 교육령에 따라 기존의 사범과, 교원 속성과, 임시 교원 양성소 등을 폐지하고, 관·공립의 사범학교를 설립하였다. 우선 1921년에 설치된 조선 총독부 사범학교를 관립 경성사범학교로 개편하여 한국인과 일본인 공학(共學)으로 보통학교와 소학교 교원을 양성하였다. 관립 경성사범학교에서는 제1부와 제2부를 두고, 제1부에서는 일본인 아동 소학교, 제2부에서는 한국인 아동 보통학교 교원을 양성하였다. 또한, 과정별로 보통과와 연습과를 두고, 강습과 또는 연구과를 둘 수 있게 하였다.
수업 연한은 6년으로 하되 보통과는 5년, 연습과는 1년으로 하였다. 다만 여자는 5년으로 하고 보통과에서 1년을 단축할 수 있게 하였다. 각 도에도 임시 교원 양성 강습소를 폐지하고 공주를 시작으로 13도에 1교씩 도립 사범학교를 설립하였는데, 이것이 특과(特科, 공립) 사범학교였다. 그렇지만 총독부는 각 도에서 사범학교를 경영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리고 국가가 교원 양성을 관리하기 위하여 1929년 대구와 평양에 관립 사범학교를 신설하고 공립 사범학교는 폐지하였다.
또한, 1928년 초등 교육 확충의 일환으로 8년 동안(1929∼1936) 매년 130여 개의 학교를 증설한다는 일면일교 계획이 발표되면서 1936년부터 해마다 한 개의 사범학교를 증설하여 1937년부터 1943년 사이에 사범학교 10 개가 각 도에 증설되었다.
이후 1943년의 제4차 조선 교육령으로 일부 사범학교는 본과 3년과 예과 4년을 둔 전문학교 수준으로 승격되었고, 남자부와 여자부를 두고 학교장 한 명 밑에서 경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그렇지만 전문학교 수준으로 승격된 사범학교 이외의 12개 사범학교는 심상과와 강습과를 두어 초등 교원을 양성하였는데, 본과를 둔 전문학교 수준의 사범학교(4개교)에서는 1종 훈도(訓導)를, 심상과를 둔 사범학교에서는 2종 훈도를 각각 양성하였다.
202) | 이원필, 「일제 통치기의 교원 양성에 관한 연구」, 『교육학 연구』 28, 1990, 129∼13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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