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1장 조선인에게 비친 과학 기술2. 철도로 보는 근대의 풍경

철도 부설을 통한 식민 지배의 강화

[필자] 박진희

1904년 5월 31일 일본의 원로 회의와 각의는 ‘대한 방침 및 대한 시설 강령’을 작성한다. 조선 침략 정책의 대강을 잡은 이 문서는 철도 부설이 곧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교통 기관을 장악할 것. 운수 및 통신 기관의 중요한 부분을 우리 쪽이 장악하는 것은 정치상·군사상·경제상 여러 점에서 매우 긴요한 것으로, 그 중 교통 기관인 철도 사업은 조선 경영의 골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순서를 따라 실행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첫째 경부 철도, 둘째 경의 철도, 셋째 경원 및 원산에서 웅기만에 이르는 철도, 넷째 마산·삼랑진 철도…….

앞의 강령에서 잘 드러나듯 일본에게 조선의 철도 사업은 ‘조선 경영의 골자’였다.

<경부선 기공식>   
1901년 8월 1일 부산 초량에서 열린 경부선 남부 기공식 광경이다. 일장기와 태극기가 보인다.

일본 통치자들은 철도를 조선의 식민지 지배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중국 대륙과 러시아 침략을 위한 발판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1940년 조선 총독부 철도국에서 펴낸 『조선 철도 40년 약사』에서도 철도는 ‘조선 통치의 국책’이라고 되어 있다.

1930년대 이후 일본의 조선 철도 지배 정책 표어인 ‘국방 공위 경제 공통’에서 잘 나타난 것처럼, 일제는 군사적 목적과 함께 상품 판매와 원료 및 식량 약탈을 위해 조선 철도를 급속히 건설했다.

갑오개혁 이후, 대한제국에서도 백성들에게 지대한 이익과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철도를 부설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는 이들이 등장했다. 이종일(李鍾一)은 철도 부설 사업이 국력 신장의 기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철도 부설이 외국에 의해 탈취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에 1898년 정부는 서울에서 목포까지 자력으로 철도를 부설한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 계획은 정부 기관으로 설치한 철도사가 담당하도록 하였으나 실행되지 못하였다.

1902년 5월에는 대한제국 정부의 서북 철도국에서 경의 철도 기공식을 진행하여 철도가 자력으로 건설될 것 같았지만, 관민의 자본 조달이 여의치 못하여 정체 상태에 빠지고 만다. 일본은 이 틈을 이용하여 대한 철도 회사와 ‘경의 철도 차관 계약’을 체결하여 철도 부설권과 철도 영업권을 손에 넣었다.

경의 철도 부설권을 장악한 일본은 철도가 완성되자 곧바로 러일 전쟁을 도발하고 임시 군용 철도 감부를 설치하여 경의 철도를 일본의 군용 철도로 만들어 버렸다. 이것은 경의 철도 차관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대한제국의 주권을 철저히 짓밟은 폭거이자 전면적 군사 침략의 첫걸음이었다. 1906년 11월에는 통감부에 철도 관리국이 설치되어 경부·경의·경인·마산포선 등 대한제국의 모든 철도를 관장하게 된다.

일본이 운영하던 경인 철도는 조선인들의 배일 감정이 점차 싹터오면서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조선인들은 일본인이 운영하는 편리한 철도를 이용하는 대신, 배편을 계속 이용하였다. 나아가 철도 운행을 방해할 목적으로 철길에서 낮잠을 자거나 돌이나 장애물을 철길에 놓기도 하였고 무임승차를 감행하기도 하였다. 이에 일본 철도 회사에서는 철도 승차를 유도하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하는 한편, 승객들의 운행 방해를 막을 목적으로 경찰을 배치하기도 하였다.

철도를 둘러싼 항일 운동은 철도 부설에 동원된 인부들에 의해 더욱 극 렬하게 전개되었다. 일본은 경부 철도와 경의 철도를 부설하면서 글자 그대로 제국주의적 침탈과 수탈을 폭력적으로 자행하였다. 일본은 두 철도의 부설 과정에서 2000만 평에 달하는 철도 용지를 수용하고 방대한 양의 철도 공사 재료와 우마·식량·가옥·분묘를 징발하고 훼손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연인원 1억 명에 이르는 조선인을 철도 부설 노동자로 동원하여 살인적인 중노동을 강요하였다. 일본은 이러한 인간 소모의 희생을 조선인들에게 덮어씌움으로써 불과 5년 남짓한 기간에 한반도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1000여 ㎞의 철도망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일본이 강행한 경부 철도와 경의 철도 부설 공사는 조선인의 생명과 재산을 소모시키고 피와 땀을 쥐어짜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열악한 노동 환경, 민족적 모멸감의 확산 등에 맞서 경부 철도와 경의 철도 연선(沿線)의 주민들과 철도 부설 공사에 동원된 노동자들은 공사 현장과 연선 각지에서 철도 파괴, 열차 운행 방해, 일본인 및 친일파 습격 등의 저항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의 싸움은 앞으로 일어날 항일 운동의 선봉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이런 조선인들의 저항 운동을 철저히 탄압하였다. 일본은 철도와 전신선이 통과하는 지역에 일본 군율을 공포하고 그 지역의 조선인 지방관을 사실상 일본군 사령관의 지휘 감독 아래 두었다. 철도 부설을 방해하는 사람은 일본군의 군사 재판에 회부하여 가차 없이 사형에 처하였다. 이렇게 조선의 철도는 노동자·주민들의 피땀으로 부설되었던 것이다.

[필자]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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