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4장 일제 강점기의 화폐1. 식민지 중앙은행 설립과 은행권 발행 제도

지폐의 시대

화폐의 역사에서 20세기 전반기는 지폐의 시대이다. 지폐는 주화를 압도하면서 현금 통화의 대부분을 차지하였고, 예금 통화는 아직 일반인에게 널리 보급되지 못하였다. 17세기부터 서구에서 본격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지폐는 소재 가치가 거의 없는 의심스러운 화폐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제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은행업의 발달과 국가 권력에 의지하여 점차 주화의 자리를 대신하였다. 그런데 한국에서 유통된 최초의 근대 지폐가 1902년 제일은행권이었다는 점은 이 시기 화폐의 근대화가 곧 식민지화였음을 말해 준다.

자본주의 역사를 보면 초기 여러 은행에 분산되었던 화폐 발행권은 국가 권력의 비호 아래 특정 은행이나 중앙은행으로 집중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일본은 19세기 후반 이 과정을 압축하여 치러냈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19세기 말 설립된 일반 은행들이 화폐 발행의 특권을 요구하였으나 대한제국은 중앙은행 설립에 의한 은행권 발행을 시도하였다. 이 와중에 제일은행이 일본 정부의 비호를 받으면서 화폐 주권을 유린하였던 것이다. 제일 은행권은 1905년 ‘화폐 정리 사업’을 계기로 공사 거래에 무제한 통용되는 법화의 지위까지 부여받아 1909년까지 발행되었다.

<한국 통감부>   
남산에 있던 한국 통감부 건물이다. 통감부는 한국에서 일본은행권과 다른 별도의 은행권이 발행될 필요에 따라 식민지 중앙은행으로 한국은행을 설립하여 제일은행의 중앙은행 업무를 인수하게 하였다.
<조선은행>   
일제 강점기에 촬영한 조선은행 전경이다. 1909년 11월 설립된 한국은행은 1911년 조선은행으로 개칭되어 1945년 연합군이 패쇄할 때까지 식민지 조선의 중앙은행으로서 은행권을 발행하였다. 1912년에 완공된 조선은행 본관은 유럽 성관풍(城館風)의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은 건물이다.
[필자] 정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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