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2장 국가 의례의 음식2. 경건하면서도 기쁘게 제사를 지내다

토지신과 곡식신에 제사를 지내던 사직

사직은 토지를 주관하는 신인 사(社)와 곡식을 주관하는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다. 사직에 가면 사단(社壇)과 직단(稷檀)이 각각 세워져 있다.

<사직도설>   
사직단의 구성을 보여 주는 도설이다. 그림 아래쪽이 북쪽으로 신이 들어오는 문이어서 세 칸으로 되어 있다. 남향하였을 때 동쪽에 토지신인 국사지신(國社之神)의 신주와 배향신인 후토지신(后土之神)의 신주를, 서쪽에 곡식신인 국직지신(國稷之神)의 신주와 배향신인 후직지신(后稷之神)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

우리나라에 사직단이 세워진 것은 삼국시대부터였다. 고구려가 392년(고국양왕 9)에 국사(國社)를 세우고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71) 신라도 선덕왕 때(재위 780∼785) 사직단을 세웠다고 한다.72) 고려시대에도 사직단은 세웠다. 991년(성종 10)에 “사(社)는 토지의 신이니 땅이 넓어 다 공경할 수 없으므로 흙을 모아 사(社)로 삼음은 그 공에 보답하고자 함이오. 직(稷)은 오곡(五穀)의 우두머리이니 곡식이 많아 널리 제사 드릴 수 없으므로 직신(稷神)을 세워 이를 제사하는 것이다.”라 하고 사직단을 세웠다.73) 조선시대에 사직단을 건립한 것은 1395년(태조 4)의 일이다. 한양을 새 도읍지로 결정한 태조는 궁궐과 종묘사직의 공사를 시행하여 이때 완성하였다. 현재 종로구 사직동에 남아 있는 사직단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사직단은 한양뿐만 아니라 지방의 각 군현에도 하나씩 설치되어 있었다.

<사직대제>   
사직단에서 제사를 지내는 과정 중에서 초헌관이 헌작하는 절차이다. 사직대제는 종묘대제와 함께 가장 격이 높은 제사로 절차와 제수의 차림은 종묘대제와 거의 같다.

사직단에서 지내는 제사는 종묘에서의 제사와 함께 가장 격이 높은 제사였다. 사직단에서는 국가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정기제와 임시제를 지냈다. 조선시대에는 매년 세 차례의 정기 제사를 지냈는데, 이를 대제(大祭)라고 한다. 사직 대제는 중춘(仲春, 2월)·중추(仲秋, 8월)의 첫 무일(戊日)과 12월의 납일(臘日)에 제사를 지냈다. 사직 대제는 국가와 민생의 안전을 기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직단에서의 임시 제사로는 기고제(祈告祭)가 있다. 기고제는 홍수·가뭄·질병 등의 국가에 재앙이 있을 때와 전쟁에 출병할 때에 날을 점쳐서 지냈다. 또한 왕실 식구들의 책봉이나 관례, 혼례 등 국가에 큰일이 있을 때에도 지냈다.74) 숙종대부터는 사직의 국사단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기곡제(祈穀祭)를 올리게 되었다.75)

[필자] 임혜련
71)『삼국사기』 권18, 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6, 고국양왕(故國壤王).
72)『삼국사기』 권32, 지1, 제사.
73)『고려사』 권3, 세가3, 성종 10년 윤2월 계사.
74)『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 권1, 길례(吉禮), 시일(時日).
75)『숙종실록』 권14, 숙종 9년 1월 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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