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신과 곡식신에 제사를 지내던 사직
사직은 토지를 주관하는 신인 사(社)와 곡식을 주관하는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다. 사직에 가면 사단(社壇)과 직단(稷檀)이 각각 세워져 있다.
우리나라에 사직단이 세워진 것은 삼국시대부터였다. 고구려가 392년(고국양왕 9)에 국사(國社)를 세우고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71) 신라도 선덕왕 때(재위 780∼785) 사직단을 세웠다고 한다.72) 고려시대에도 사직단은 세웠다. 991년(성종 10)에 “사(社)는 토지의 신이니 땅이 넓어 다 공경할 수 없으므로 흙을 모아 사(社)로 삼음은 그 공에 보답하고자 함이오. 직(稷)은 오곡(五穀)의 우두머리이니 곡식이 많아 널리 제사 드릴 수 없으므로 직신(稷神)을 세워 이를 제사하는 것이다.”라 하고 사직단을 세웠다.73) 조선시대에 사직단을 건립한 것은 1395년(태조 4)의 일이다. 한양을 새 도읍지로 결정한 태조는 궁궐과 종묘사직의 공사를 시행하여 이때 완성하였다. 현재 종로구 사직동에 남아 있는 사직단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사직단은 한양뿐만 아니라 지방의 각 군현에도 하나씩 설치되어 있었다.
사직단에서 지내는 제사는 종묘에서의 제사와 함께 가장 격이 높은 제사였다. 사직단에서는 국가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정기제와 임시제를 지냈다. 조선시대에는 매년 세 차례의 정기 제사를 지냈는데, 이를 대제(大祭)라고 한다. 사직 대제는 중춘(仲春, 2월)·중추(仲秋, 8월)의 첫 무일(戊日)과 12월의 납일(臘日)에 제사를 지냈다. 사직 대제는 국가와 민생의 안전을 기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직단에서의 임시 제사로는 기고제(祈告祭)가 있다. 기고제는 홍수·가뭄·질병 등의 국가에 재앙이 있을 때와 전쟁에 출병할 때에 날을 점쳐서 지냈다. 또한 왕실 식구들의 책봉이나 관례, 혼례 등 국가에 큰일이 있을 때에도 지냈다.74) 숙종대부터는 사직의 국사단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기곡제(祈穀祭)를 올리게 되었다.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