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2장 국가 의례의 음식6. 나라의 큰 슬픔, 국상을 치르다

입관하여 발인까지

왕이 임종하신 그날에 시신을 새 옷으로 갈아입히는 습(襲)을 한다. 습을 하고 나면 전(奠)을 처음으로 올리게 된다. 전은 상례를 치르는 동안에 영전에 음식물 올리는 것을 말한다. 습을 한 후에는 시신의 입에 쌀과 진주를 넣는 반함(飯含)을 하였다. 반함에 쌀과 진주를 쓰는 것은 시신의 입을 차마 비울 수 없기 때문이며, 그것을 먹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반함을 한 후에는 상 밑에 얼음을 넣어 차갑게 하고 그 위에 평상을 놓고 시신을 모셨다. 그리고 혼백(魂帛)을 만들어 영좌(靈座)에 올려놓는다. 영좌는 붉게 칠한 교의(交椅)를 남향으로 설치한 것이다. 또한 영좌 앞에는 붉은 비단에 ‘대행왕재궁(大行王梓宮)’이라고 쓴 명정(銘旌)을 설치하였다. 명정은 죽은 자의 관직명을 쓴 깃발을 의미한다. 명정을 설치하는 것은 이름을 명백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죽은 사람은 얼굴과 형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를 구별하기 위해 표시하는 것으로 죽은 자를 사랑과 공경의 마음으로 기리면 서 도리를 다 하는 것이다.120)

<명정(銘旌)>   
명정은 죽은 자의 관직과 성명을 쓴 깃발로 상례 기간 동안 빈전에 두며, 국장 행렬 때에는 재궁을 실은 대여 앞에 서서 가게 된다. 왕의 명정에는 ‘대행왕재궁(大行王梓宮)’이라고 썼다. 『정조국장도감의궤』의 명정이다.

왕이 돌아가신 지 3일째가 되면 우선 사직·종묘에 대신을 보내어 상례를 고한다. 그리고 19벌의 옷을 시신에게 입히는 소렴(小斂)을 행한다. 왕이 돌아가신 지 5일째 되는 날에는 대렴(大斂)을 하는데, 시신을 90벌의 옷으로 감싸는 것이다. 왕의 시신을 관인 재궁(梓宮)에 넣고, 네 귀퉁이에는 평상시 빠진 치아·머리털·깎은 손톱과 발톱을 넣는다. 이로서 입관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입관 후 상복으로 갈아입은 후에는 왕세자가 즉위를 한다. 왕세자의 즉위는 선왕의 장례절차가 진행 중에 치르기 때문에 간략하게 시행하였으며, 그날 즉위 교서를 반포한다. 입관 후 왕은 유교 예법에 따라 5개월 동안 국장(國葬)을 치렀는데, 이 기간 동안 재궁을 모시는 곳을 빈전(殯殿)이라 하였다. 빈전은 왕이 임종한 곳에서 편리에 따라 적당한 건물에 설치했다. 빈(殯)이란 집 내부에 시신을 가매장한 장소를 뜻하며, 손님이란 의미의 빈(賓)과도 통하였다. 자식의 입장에서 돌아가신 부모를 빈에 모실 때는 손님처럼 모신다는 뜻으로, 죽은 자와 생전에 맺었던 혈연의 정을 점차 정리하라는 의미였다. 이 기간 동안 뒤를 이은 왕은 빈전 옆의 여막에 거처하면서 수시로 찾아와 곡을 함으로써 어버이를 잃은 자식의 슬픔을 다하였다.121) 빈전에서는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전(奠)을 올리고 상식(上食)을 올리게 된다. 이렇게 5개월이 지나면 장사를 치르게 된다.122)

[필자] 임혜련
120)『예기』 4편, 단궁(檀弓) 하(下).
121)신명호, 『조선 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 문화』, 2002, 돌베개.
122)이상의 의례의 절차는 『국조오례의』 권7, 흉례(凶禮)를 참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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