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5장 붓그러하면 큰 병이 생깁니다2. 근대적 신체와 월경

따님 두신 어머니의 주의점

월경이 ‘처녀기’의 징조이자 여성성의 상징으로 주목되면서 예비 교육이 강조되었다. 난소는 사춘기에 도달할 때까지 “잠자는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가 일정한 시기가 되면 번쩍 잠을 깨어서 처음으로 일을 시작”한다366)고 비유하였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해 여성 자신도 알아야 하였지만, ‘어머니’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이러한 역할 강조는 여성 간의 경험과 지식의 공유, 전달보다는 ‘처녀기’에 대한 관리 통제에 있었다.

월경으로 가시화되는 ‘처녀기’의 변화는 ‘여성의 평생’을 좌우한다고 간주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모리 보아도 귀염성스러운 처녀들이 어느 시긔에 가서는 남몰래 혼자 크게 놀라는 때는 월경이 시작되는 때”를 대비해 ‘예비지식’을 가르치라고 강조하였다. “요사이 여학교 교육은 이과와 생리위생이라는 과목에서 가르치게 되었지만, 가정에서의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몸의 변화 외에 성격에도 변화가 있다고 설명하였다. “성미가 조급하여지고 퍽 시시덕대는 사람이 되고 잘못되면 말괄량이도 되고 혹은 살이 퉁퉁이 찌는 수도” 있으며, “튼튼하였던 여자가 점점 약질이 되는” 변화가 있으니, 미리 예비지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367)

어머니가 갖추어야할 지식은 14∼15세쯤 되면 월경이 시작된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당시 여성이 14∼15세에 월경을 시작하였는지 여부보다 특정 시기로서 14∼15세라는 연령대를 지목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자기 딸도 자신과 같이 19세나 되어야 나오려니 하고 항상 어린애로만 생각하고 그런 성교육에 대한 준비 교육을 도무지 시키지 않이 했을 때”에 딸은 “갑자기 나오는 피를 보고 몹시 놀래여 부끄러워서 말도 못하고 혼자 번민하다가 정신적 변화까지 일으키는 수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368)

여의사인 허영숙도 14살 정도가 되면 월경을 시작하니, 어머니들은 미리 12살 때부터 월경이 나타난다고 말해 두도록 강조하였다. 더구나 이때는 ‘어린 처녀가 심리가 변하고 신경이 예민해졌을 때’이기 때문에 월경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깜짝 놀라 정신상 좋지 못한 영향을 준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일본 사람은 처녀에게 월경이 시작되는 날을 큰 명절이라 하며 팥밥을 짓고 친척이 모여 축하를 하는데, 조선 사람은 큰 수치처럼 쉬쉬하고 남에게 눈치 채게 하는 것을 무슨 큰일을 저지른 것처럼 근심을 한다며 비교하였다. 그리하여 어머니들에게 “월경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남에게 눈치 채여도 너무 근심하고 상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자세히 일러 줄 것”을 전하고 있다.369)

이런 ‘예비지식’은 기존에 여성 사이에 공유되고 전달되는 지식이 아닌, 의학적·위생적으로 새로 정립된 지식을 의미하였다. 허영숙의 말처럼, 월경은 쉬쉬할 것이 아니라 여성의 신체상 변화로서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며, 터부시할 것이 아니라 과학으로 설명해야 하는 것이었다. 의학적 이해 방식은 문명화된 이해 방식으로서, 월경을 터부시하는 관습을 거부할 수 있는 하나의 근거가 되었다. 신체의 구조와 생리의 관점에서 불안을 정리하고, 위생과 의학의 입장에서 설명과 치료를 구하게 되었다. 자기 신체에 대한 배려가 있었지만, 위생과 의학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런데 월경에 대한 병리학적 이해에는 인종적 풍토론적 인식이 결부되어 있다.

기후로 논하면 열대 지방에는 최조(最早)하며 온대 지방에는 부조불지(不早不遲)하며 한대 지방에는 최지(最遲)하고, 그 생활 상태로 논하면 도회에 사는 부인은 촌에 사는 부인보다 조(早)하며, 사치일락(奢侈逸樂)의 생활을 하는 부인은 질박의 생활을 하는 부인보다 조(早)하고, 체질로 논하면 건전하야 충분히 발달된 부인은 물론 허약하야 발육이 불충분한 부인보다 조(早)하나니……370)

이러한 풍토론은 논리적 일관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였다. 교육·계층·문화 정도에 따라 다르다는 식이었는데, 그 기준에는 ‘여성성’에 대한 편견이 자리 잡고 있었다. 기후와 풍토만이 아니라, 문화와 교육 정도에 따라서도 다르다는 설명이 많이 보이는데 논자에 따라 설명 기준이 모호하기 일쑤였다. 예를 들어 월경의 시작은 부자가 빈자보다 빠르고 하류 가정이 상류 가정보다 빠르다고도 한다.371) 또 여학생은 이르고 노동 계급은 늦으며, 도회 사람은 시골 사람보다 빠르다고 설명한다.372) 양육 환경이라는 차원에서 ‘화류계(花柳界)’라는 기준이 나오기도 한다. “화류계에 가까이 사는 여자는 초조(初潮)가 비교적 일즉 나타나고, 엄격한 가정에 자라난 여자는 비교적 월경이 늦게 시작되는 경향이 있다.”고도 한다. 뒤이어 “성교육 을 잘한 여자는 월경이 비교적 조기에 나타나는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373) 이러한 설명은 계층적으로 비슷한 범주에 대해서도 일관성이 없었다. 이는 월경을 ‘처녀기’의 상징으로 이해한 것과 관련이 있다. 곧 처녀기의 성욕은 통제 관리되어야 하며, 처녀기의 가치는 ‘순결함’에 있었다. 그런데 환경적 차원이든 교육에 따른 지식의 차원이든 ‘성적 자극’을 받게 될수록, 월경은 빨리 시작된다는 인식을 깔고 있다. 특히 ‘순결함’이나 통제 관리에 영향을 미치는 ‘화류계’라는 요소는 처녀기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월경을 빨리 시작하게 한다고 보았다. 성교육을 잘한 것과 월경의 빠른 시작을 연결 짓는 것은 성에 대한 여성의 자각을 통제해야 한다는 시각을 전제하고 있었다.

[필자] 김미현
366)김석환, 「사춘기의 의학적 지식」, 『여성』 3권 5호, 1938년 5월.
367)『조선일보』 1927년 8월 25일자.
368)김석환, 「사춘기의 의학적 지식」, 『여성』 3권 5호, 1938년 5월.
369)『동아일보』 1926년 3월 3일자.
370)우곡생, 「월경론」, 『여자계』 3호, 1918년 9월호, 48쪽.
371)여의사 길정희, 「월경과 위생」, 『여성지우』 1권 2호, 1929년 2월, 105쪽.
372)정근양, 「성 생리학 2」, 『여성』 1권 7호, 1936년 10월.
373)연구생(硏究生), 「여자의 건강과 월경」, 『장한(長恨)』 2호, 1927년 2월, 97쪽 ; 『조선일보』 1933년 2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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