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1장 고대의 무기와 무예

1. 고대 무기의 기본

[필자] 김성태

고대의 역사, 특히 삼국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기원을 전후하여 고구려·백제·신라는 주변 소국을 정복해 나가면서 고대 국가를 형성하였고, 4세기 이후에는 영토 확장에 나선 삼국 사이의 무력 충돌이 잇따랐다. 그리고 7세기에는 중원을 통일한 수나라와 당나라가 본격적으로 주변 국가의 정복에 나서면서 국제전 양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렇듯 삼국시대는 전쟁의 와중에 있었으며, 당시에도 전쟁이란 집단 간의 생존을 건 싸움이었다. 그런 까닭에 전쟁의 각 주체들은 살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고, 또 전술 효과를 최대화할 수 있는 무기를 개발하는 데에 힘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지형에 맞는 무기를 개발·발전시켰으며, 전쟁 규모의 발전에 따라 무기의 종류와 형태를 변화시켰다. 또 한편으로는 중국의 선진화된 병기 체제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우리 실정에 맞게 개발하였다.

삼국의 전투는 산악·구릉을 중심으로 펼쳐졌으며, 전투 방식은 들을 비우고 산성에 들어가 장기간 항전하는 청야수성(淸野守城)을 기본으로 하였다. 또한 전투력 향상을 위하여 국가적으로는 말을 달리면서 활을 쏘는 기술인 기사(騎射)를 장려하였고, 전쟁 담당은 전사 집단(戰士集團)을 중심으로 수행되었다. 이런 환경적·사회적·군사적 배경은 무기의 발달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개마 갑주 무사도>   
고구려 고분인 통구 12호분의 북분에 그려진 벽화이다. 삼국시대에는 기마 전투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였다. 특히 기마 무사뿐만 아니라 전투말까지 갑옷으로 무장한 개마 갑주 무사는 삼국 중기 전쟁터의 총아였다. 5세기 고구려 영토 팽창의 주역은 바로 이들 중무장 기마병이었다.

우선, 산악 전투의 성행은 활과 창의 발달을 촉진하여 삼국 병기 체제가 창과 활을 기본으로 구성되는 결정 인자가 되었다. 특히 수성전(守城戰)의 성행은 원거리 무기인 투석기, 쇠뇌, 장궁 등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이런 병기 체제는 같은 시기 중국의 병기 구성이 평원 전투에 적합한 극(戟, 가지창)과 노(弩, 쇠뇌)를 기본으로 하였던 것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다음으로 삼국은 기사를 국가적으로 장려하여 기사 능력을 평가하여 인재를 등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군왕의 첫 번째 자질로 기사를 중시하였다. 이런 기사의 장려는 단궁(短弓)과 마구(馬具)의 발달, 말타기에 적합한 찰갑(札甲) 중심의 무장, 말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식마(飾馬) 풍습의 유행 등을 초래하였다.

마지막으로 전투가 고도로 훈련된 전사 집단을 중심으로 치러졌던 중세적 전쟁 방식 역시 삼국 무기의 성격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즉 기마 무사와 말을 온통 찰갑으로 무장시킨 중무장의 철기(鐵騎)가 전투의 중핵을 담당하였다. 그에 따라 말갑옷과 비늘갑옷이 발달하였고, 말 위에서 사용하기 적합한 장창인 삭(矟)이 장병기(長兵器)의 기본이 되었다.

[필자]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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