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1장 고대의 무기와 무예

2. 기마 전투의 성행과 마구·갑옷의 발달

[필자] 김성태

삼국시대의 대표적인 갑옷은 고구려의 찰갑(札甲)과 가야의 판갑(板甲)을 들 수 있다. 찰갑은 비늘갑옷이라고도 하는데, 크기 2.5∼9㎝ 정도의 작은 철비늘을 끈으로 좌우·상하 연결하여 신체 곡선에 맞게 만든 갑옷이다. 갑옷의 모양이 신체의 곡률(曲率)과 맞고 활동성이 보장되어 기마용으로 적합하다. 그에 비하여 판갑은 글자 그대로 길이가 긴 철로 만든 장판(長板)을 철못·끈 등으로 연결하여 만든 갑옷이다. 신체의 곡률과 맞지 않고 활동성이 찰갑에 비하여 떨어져 일반적으로 보병용 갑옷으로 평가된다. 갑옷과 함께 세트를 이루는 투구는 긴 철판을 연결하여 만든 종장판주(縱長板冑), 작은 철판을 이어서 만든 소찰주(小札冑) 등이 대표적이다. 종장판주는 투구 꼭대기에 철사발을 엎어 붙였는데, 그런 이유로 몽고발형주(蒙古鉢形冑)라고도 한다.

앞에서 소개한 갑옷과 투구들은 대부분 4세기 후엽부터 5세기 말엽에 만든 것으로 삼국시대 중기에 해당한다. 현재까지 기원후 1세기에서 3세기까지에 해당되는 삼국시대 전기에 제작한 갑옷은 출토되지 않았다. 가 죽·뿔·나무·종이 등과 같은 유기물로 만든 갑옷이 있었을 개연성이 매우 높지만, 모두 부식되어 유물로 남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삼국시대 후기인 6세기 이후에 제작한 갑옷은 실물이 거의 단편적으로 확인되어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단지 문헌 속에 명광개(明光鎧)에 관한 언급이 자주 확인되어 명광개가 유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30) 명광개는 가슴을 보호하기 위한 흉갑(胸甲)의 모양이 둥근 거울 모양인 갑옷으로, 황칠을 하여 그 광채가 상대편의 눈을 부시게 하였다 한다.

<판갑과 투구>   
고령 지산리 고분에서 출토된 5세기 가야의 갑옷과 투구이다. 긴 철로 만든 장판을 철못·끈 등으로 연결하여 만든 판갑은 신체의 곡률과 맞지 않고 활동성이 떨어져 보병용으로 쓴 것으로 보인다.
[필자] 김성태
30)대표적으로 『신당서』 권220, 열전145의 고구려조와 백제조를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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