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2장 시간의 측정과 보시

4. 시계의 종류와 시간 측정

[필자] 문중양

평평한 땅에 수직으로 막대기를 세워 놓으면 생기는 해 그림자를 통해 처음으로 시간을 관측한 이후, 인류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시간을 측정해 왔다. 인류가 그동안 사용해 왔던 시계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관측해서 시간을 측정하는 시계와 인위적으로 물리적·화학적 변화를 일으켜 시간을 측정하는 시계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후자에 속하는 대표적인 시계는 물시계이다. 시간에 따라 정량만큼 낙하하는 물의 양을 재서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클렙시드라(Clepsydra)’라 불렀고, 동아시아에서는 ‘누(漏)’라 불렀다. 물뿐만 아니라 정량적으로 낙하하는 물질에 따라서 모래를 사용하면 모래시계가 된다.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으로는 양초를 태우거나 향을 태우는 경우가 있는데, 각각 양초 시계, 향 시계라 부른다. 양초와 향을 태워 타들어 가는 양을 보고 시간을 측정하는 양초 시계나 향 시계는 양초나 향을 많이 쓰던 사원 등에서 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화학적 변화를 이용한 시계들은 정확한 시간을 재는 데에는 부족해서 물시계나 모래시계에 비해 널리 쓰이지는 않았다.

이 밖에도 역학적 에너지를 이용하는 기계식 시계가 있다. 태엽이 풀 리는 일정한 힘을 이용하거나, 무거운 추가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자유 낙하하는 현상을 이용해서 시간을 재는 방식 등이다. 이러한 기계 시계는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서구에서는 오래 전부터 만들어졌다. 그러나 태엽이 풀리는 시간이나 추가 자유 낙하하는 시간 등이 처음과 끝이 일정하지 않아 균일한 시간을 정밀하게 측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비교적 쓸모 있는 기계 시계가 실용화하기 위해서는 속도를 일정하게 해주는 부수적인 장치가 더 필요하였다. 그 획기적인 전기는 갈릴레이(Galileo Galilei)의 진자 법칙(振子法則)을 이용한 탈진기(脫進機)의 등장이다. 1582년 갈릴레이가 추의 진동이 등시성을 가진다는 원리를 발견한 이후, 그 성질을 이용해서 기계 시계의 정밀도를 높일 수 있는 장치가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결국 1656년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호이겐스(Christiaan Huygens)가 하루에 10초 정도의 오차를 내는 정밀도를 지닌 탈진기를 성공적으로 개발하였다. 이후 빠른 속도로 기계 시계가 실용화되어 널리 보급되었다. 실로 서구의 근대는 이러한 탈진기를 갖춘 기계 시계의 대중적 보급과 함께 등장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계 시계가 등장하면서 서구에서 해시계와 물시계 등은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자연의 변화를 관측해서 시간을 재는 자연 계시기(natural time-keeper)로는 단연 해시계가 대표이다. 잘 알다시피 해시계는 태양의 일주 운동(실제로는 지구의 자전)과 연주(年周) 운동이라는 천문학적 운동을 통해 하루와 1년을 재는 것이다. 그런데 기준을 달리함에 따라서 하루와 1년의 길이가 달라진다. 즉, 인간의 눈에 보이는 외견상 드러난 태양의 운행 주기를 잰 시간은 태양일과 태양년(또는 회귀년)이 된다. 즉, 인간이 보기에 태양이 천구(天球) 상의 자오선(子午線)을 통과하는 때부터 다음 자오선을 통과할 때까지의 시간이 태양일이다. 태양이 천구 상의 황도 위에서 춘분점을 지나 다음 춘분점을 지날 때까지의 시간이 태양년이다. 물론 실제 태양의 운행 속도에 따라서 매일의 태양일과 매년의 태양년은 아주 조금씩 다르다. 보통 겨울의 태양일이 여름의 태양일보다 길다.76) 그렇기 때문에 매일 측정하는 태양일은 진태양일, 1년 중의 진태양일을 평균한 것을 평균 태양일이라 한다. 진태양일이 매일 달라지기 때문에 실용적이지 못해 그것을 평균한 평균 태양일과 평균 태양시를 현실에서는 사용한다. 이와 같이 태양의 겉보기 운행을 관측해서 태양일과 태양년의 시간을 재는 시계가 바로 해시계이다. 즉, 해시계는 태양시를 재는 시계인 것이다.

태양의 겉보기 운동을 통해 얻은 태양시와 달리 지구의 실제 운동을 관측해서 얻어 내는 항성시(恒星時)가 있다. 항성일은 지구가 실제로 한 번 자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그 기준은 태양이 아니라 무한한 거리에 있어 우주 공간에서의 위치를 바꾸지 않는 별, 즉 항성이다. 항성일의 측정은 특정한 별이 천구 상의 자오선을 통과해서 다음 자오선을 통과할 때까지의 시간을 잰다. 그런데 항성일은 평균 태양일보다 약 4분씩 빠르다. 이 시간이 쌓여서 1년이 되면 약 24시간 정도가 빠르다. 결국 항성년과 태양년은 거의 하루 차이가 나는데, 정확하게는 365.2422평균 태양일=366.2422항성일이 된다. 이러한 항성시를 관측하는 시계가 별시계이다. 세종대에 처음으로 만든 ‘일성정시의’가 바로 별시계이다. 물론 낮에는 해시계이지만 해가 지는 밤에는 별을 관측해서 시간을 쟀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해시계를 만들어 사용하였는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인류 공통적으로 선사시대부터 원시적인 해시계를 만들어 시간을 잰 것으로 미루어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오래 전부터 해시계를 통해 시간을 측정하였을 것이다. 역사 기록상으로는 『삼국사기』에 고구려의 ‘일자(日者)’, 백제의 ‘일관(日官)’이라는 관원이 있었다는 기록이 가장 이르다. 이러한 관원들은 분명 해를 관측해서 시간을 재던 임무를 맡았을 터이다. 또한, 신라의 첨성대(瞻星臺)도 그러한 사정을 암시한다. 첨성대에서 어떻게 천문을 관측하였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태양을 비롯한 천체를 관측하던 기구임에는 분명하다. 현재 국립 경주 박물관에는 신라시대의 해시계로 추정되는 해시계 파편 조각이 남아 있다. 화강암의 원반 위에 자시부터 묘시까지의 시간 눈금이 남아 있는 평면 해시계이다. 이로 보아 삼국시대에는 삼국 모두 국가적인 차원에서 태양 운동의 관측을 통하여 시간을 측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신라시대의 해시계>   
국립 경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해시계 파편이다. 반경 약 33.4㎝의 원반 모양의 화강암에 눈금을 그은 해시계로, 6∼7세기경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해시계를 제작해서 시간을 측정한 기록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단지 국립 중앙 박물관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해시계가 유일하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이미 선명력이라는 역법을 사용하였고, 일식과 월식 등의 천문 관측 기록을 『고려사』에 남긴 것으로 보아 해시계 등의 시계를 틀림없이 제작하여 썼을 것이다. 그러나 고려시대에는 고대와 크게 달라진 관측 기구와 해시계를 제작한 것 같지는 않다. 이러한 사정은 중국의 역법 중에서 천문 관측 기구와 정밀한 데이터로 유명한 수시력(授時曆)이 고려 후기에 도입되면서 달라졌다. 수시력이 도입된 뒤로 고려가 멸망할 때까지 고려의 천문학자들은 수시력을 완벽하게 소화하지 못하였다. 수시력의 근간이 되었던 우수한 각종 관측 기구도 제작되지 못하였다. 수시력을 도입하려는 노력이 가시적으로 성과를 드러난 것은 조선 초기에 이르러서였다. 세종대에 이루어진 천문 관측 기구의 창제 프로젝트 과정에 각종 관측 기구가 개발·창제되면서 수시력도 본격적으로 소화할 수 있었다.

<고려시대의 해시계>   
고려시대의 평면 석각 해시계이다.
[필자] 문중양
76)이렇게 시기에 따라서 태양일이 달라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태양이 적도 상을 운행하지 않고 황도 상을 운행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태양이 황도 위를 움직일 때 등속도를 유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태양의 궤도가 동심원이 아니고 타원 궤도여서 나타나는 각속도의 차이에서 연유한다. 이 때문에 태양의 운행 속도는 근일점(즉 태양에 가까운 타원의 꼭짓점, 1월 초)에서 가장 빠르고, 원일점(7월 초)에서 가장 느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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