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1장 예를 따르는 삶과 미술5. 옛사람에게 배우는 교훈

역대 군신 명현 화첩, 그림으로 보는 위인전

우리나라에서 인물화는 산수화보다 먼저 발달한 분야이다. 훌륭한 위인의 모습을 재현한 그림에서 후대의 사람들은 받들고 따라야 할 본보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따라서 관아나 향교 같은 공공장소에 이러한 초상화를 걸어 놓아 뭇사람에게 교훈을 삼도록 하였다. 회화가 발달하면서 작은 화첩의 형태로 이러한 위인들의 초상이 활발히 제작되었고, 점차 목판 인쇄 기술이 발달하면서 널리 보급되었다.

이러한 인물 화첩은 역대 제왕과 고대 성현을 그려 교훈으로 삼고, 효자 및 열녀를 기록하여 본보기로 삼았다. 『역대군신명현화첩(歷代君臣名賢畵帖)』 같은 화첩류는 성군(聖君)과 폭군(暴君)을 함께 수록하였으며 충신(忠臣)과 은사(隱士)를 포함하였다. 많게는 200명이 넘는 인물이 포함된다. 이들 인물은 사실적인 초상도 있지만 후대에 상상하여 그려 낸 것도 많았다. 이러한 화첩에 포함된 인물은 대개 반고(盤古), 복희(伏犧) 같은 전설상의 인물부터 시작하여 중국 역대의 제왕과 명신이 대부분이었고, 우리나라의 인물인 최치원, 안향, 정몽주, 김시습 등을 맨 뒤에 덧붙였다.53)

<『역대도상』의 최치원>   
『역대도상』은 모두 네 권의 화첩으로 이루어졌으며 중국 고대부터 명대에 이르는 인물 220명이 망라되어 있다. 최치원은 신라의 학자로 문장가로 이름을 떨치고 높은 관직을 지냈으나 혼란한 세상을 등지고 각지를 유랑하였다.

이러한 화첩의 목적은 성현에게 배우는 교육적 효과에 치중하였다. 따라서 왕실이나 관아에서 주관하여 간행한 경우가 많다. 이렇게 백성을 교화하는 데 사용되었던 만큼 각 인물의 초상과 함께 이들의 행적을 칭송하는 찬문(讚文)을 함께 갖추어 발간하기도 하였다. 한편으로는 임금과 신하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를 강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등장인물이 대부분 중국의 역대 제왕과 그들의 신하들인 만큼 이런 종류의 화첩은 중국에서 만들었던 것이 다시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수정과 보완을 거친 것이다. 중국에서는 늦어도 원대 말엽에는 이러한 성현도 계통의 초상화첩이 나왔고, 그것이 조선에 전해져 이를 기초로 모각(模刻)을 하였다. 특히, 명대인 1606년에 편찬된 『삼재도회(三才圖會)』는 이런 초상화들 을 집대성해 놓아 이후 나타나는 판본의 원형이 된다.

우리나라 인물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공신들의 초상이 활발히 그려졌으나 이들 초상이 이렇게 체계적인 화첩의 형식으로 제작되지는 않았다. 조선 후기에는 명신 화첩이 제작되기도 하였으나 등장인물의 당파나 생존 시기가 제한되었다.

이러한 『역대군신명현화첩』은 보급을 염두에 두었던 만큼 먼저 초고를 그리고 이를 목판으로 새겨 다시 목판본으로 인쇄하였다. 시각 문화의 차원에서 이러한 위인들의 초상화는 교훈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는 역할도 하였다. 말로만 듣던 유명한 옛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을 본다는 것은 시각적인 즐거움이기도 하였다. 성현들의 초상 화첩은 인생의 길잡이를 선현들에게서 찾으려는 욕구와 개인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하는 욕망이 결합되어 많이 제작되고 유포되었던 것이다.

[필자] 조인수
53)조인수, 「조선 후기 『역대도상』 화첩의 성격과 역사적 의의』, 『그림으로 읽는 역사 인물 사전』, 중국 미술 연구소, 2003, 262∼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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