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근대와 만난 미술과 도시를 내면서

‘근대와 만난 미술과 도시’라는 제목의 이 책은 우리나라의 근대와 현대 미술을 기존의 미술사와는 다른 각도에서 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러므로 통상적인 미술사 서술에서와 같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술 작품을 미의 반영으로서만이 아니라 문화의 반영으로 보려는 의도하에 이 책에서는 회화, 조각, 건축사를 주로 다룬 기존 개설사와 달리 근·현대화되는 도시의 삶 속에서 미술이 어떻게 전개되었고, 도시 속의 관객과 어떤 관계를 갖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미술사에서는 관람자라는 용어를 많이 쓰고 있으나 이 책에서 다루는 미술은 순수 미술뿐 아니라 인쇄 매체, 인터넷 등의 시각 문화를 포함하기 때문에 관람자, 독자, 청중을 포괄하는 용어인 관객이라는 용어가 더 적절하다고 보았다. 필자들은 20세기 우리나라의 미술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미술품, 미술가, 시장, 관객, 도시 공간과 시각 문화로 보았고, 이러한 목표를 위해서 사회사적·경제사적·문화사적 관점을 취하고자 하였다.

미술 작품, 미술가, 미술 시장, 관객, 도시 공간과 시각 문화라는 다섯 가지 범주를 모두 관통하는 개념은 근대성과 근대화이다. 근대성이란 근대 사회로 변화하면서 겪게 되는 인간들의 경험을 의미한다. 근대성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상업적 교류가 빈번해지는 도시적 삶, 군중 속에서의 공공 공간과 스펙터클한 전시의 경험과 관련된다. 근대 사회로 변화하던 19세기 유럽에서 근대성의 도구는 과학과 실증주의였다. 국가 체제는 제도화되고 사회는 규범화되었으며, 근대 학문은 과학적이고 실증주의적 방법에 따라 체계화되었다. 또 근대 사회로 전환됨에 따라 개인 간의 경쟁이 유발되면서 개인과 자아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이제까지 다수 속에 묻혀 있던 개인은 자기 개발과 자기 세계를 추구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개인주의를 파생시키고 남녀 관계와 가족의 의미에도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의 근대화 역시 서양 근대의 충격과 더불어 서구적 근대 개념이 우리나라 사람의 삶 속으로 서서히 이식되면서 전개되었다. 민주주의와 보편적 개인이라는 개념이 등장하였고, 개인이 경제적 주체로서 자립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이윤 추구의 정당성이 확보되었다. 이러한 근대의 물결은 우리의 소비 생활과 주거 생활을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일상생활, 가족 제도, 인간관계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술 작품 역시 작가 의식과 내면세계가 반영된 외부 세계와의 소통이라는 개념으로, 그리고 미술가는 창작의 주체로 규정되었고, 수집가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작품을 소유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근대성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은 198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즉 탈근대주의 담론(談論)이 형성되면서부터였다. 근대로부터 벗어나는 탈근대주의의 논의가 오히려 우리의 근대주의(모더니즘)와 근대성(모더니티)의 정체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성, 과학, 진보, 규범에 근거한 근대 사회의 신념에 대한 반성이자 비판으로 등장한 탈근대주의 담론을 계기로 사회의 새로운 가치 체계 수립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확대되었다. ‘타자’의 삶에 너그러워지고, 대중문화, 여성 운동 등이 부각되었으며, 소비 중심 사회, 정보 사회, 미디어 담론이 새로운 관심사로 등장하였다. 1990년대 이후부터는 전 세계의 문화적 관심은 탈근대주의에서 벗어나 글로벌리즘과 다문화 사회로 넘어가고 있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한류(韓流) 드라마가 아시아뿐 아니라 중남미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이제 경제적·정치적으로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국가의 경계가 사라지는 초국가주의적인 현상이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전 지구적인 문화의 공유 현상이 나타나면서 이제는 한 나라의 시민으로서뿐 아니라 세계 시민으로서의 의식이 촉구된다. 초국가주의적 현상을 가장 잘 대변하는 매체가 디지털 문화, 케이블 텔레비전, 인터넷이다. 지금까지 견고한 유형의 대상을 중심으로 사용하던 미술이라는 용어만으로는 이런 상황을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였고, 따라서 이미지 자체를 더 중요시하는 시각 문화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지난 20세기에 이루어진 이러한 미술의 변화와 흐름을 사회적·경제적·문화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 이 책은 다섯 가지 요소를 각 장의 주제로 정해 미술의 탄생, 미술가의 자의식, 미술과 시장, 미술과 관객, 도시 공간과 시각 문화로 구성해 보았다. 제1장 ‘미술의 탄생’에서는 근대적 제도 및 배치를 통해서 미술 개념이 형성되는 과정을 기술하였다. 미술이라는 단어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근대에 탄생한 새로운 개념이었다. ‘미술(美術)’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후 서구의 문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려는 목적으로 1873년 오스트리아 빈 박람회에 사절단을 파견한 일본이 영어 ‘fine arts’의 번역어로 처음 사용한 용어였다. 전통적인 서화나 골동품과 구별되는 근대적 개념인 이 번역어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직후에는 대체로 ‘기술’과 동의어로 사용되다가 점차 현재와 같은 의미로 자리를 잡았다.

미술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탄생과 함께, 전통적으로 존재하던 서화, 조각, 도자기 등은 이제 미적 시선으로 분석되었다. 또 양식과 매체에서 확연히 구별되는 서양 미술이 도입됨으로써 회화 내에서도 동양화, 서양화의 분리가 이루어졌다. 특히 미를 객관적으로 추상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근대적 미술 교육, 한 공간 속에서 미술품을 질서화함으로써 특정한 시선을 내면화시켰던 전람회와 미술관은 미술이 근대적인 개념으로 정착될 수 있었던 중요한 물적 토대였다. 전람회는 미술의 새로운 위계질서를 성립시켰다. 공예와 회화가 중심이던 전통 미술의 위계와 달리 서양적 미술 개념에 근거해 회화와 조각이 중심에 놓이게 되었으며, 공예와 서예는 순수 미술 이외의 영역으로 취급되었다. 또 1910년 이후 쏟아져 나온 신문이나 잡지 등의 미디어는 미술을 간접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시켜 주었다. 제1장에서는 이런 배경 속에서 미술 비평 및 미술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어떻게 근대 미술 담론을 구성하게 되었는지 서술하였다.

미술에 대한 인식 변화는 미술가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아에 대한 인식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는데, 이러한 측면을 살펴본 것이 제2장 ‘미술가의 자의식(自意識)’이다. 조선시대에 사용하던 화원(畵員)이라는 호칭은 더 이상 쓰지 않게 되었는데, 이것은 단순히 호칭상의 변화가 아니라 미술가의 역할과 사회적 인식의 변화, 그리고 미술가 스스로 자의식이 바뀌었음을 나타낸다. 조선시대의 화원들은 창작으로서 미술품을 제작하였다기보다는 수요자를 위해 작품을 제작하였다. 물론 사대부 문인 화가도 있었으나 이들의 미술 역시 자신의 지적·도덕적인 면모를 드러내기 위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오늘날 미술가의 창작의 목적과는 달랐으며, 기본적으로 문인 화가들은 아마추어였다고 할 수 있다. 근대 화단이 전통 화단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기술로서가 아니라 창의적인 학문으로서 미술을 교육받은 작가가 등장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미 1930년대부터는 자신의 주관을 추구하고 표현하거나, 추상(抽象) 미술 같은 실험적 시도를 하는 미술가들이 등장하였다.

예술가는 기본적으로 안착하기보다 기존 미술을 전복하고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미술가의 사회적 역할이나 이미지 역시 끊임없 이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근대기 미술가의 이미지가 고독과 가난 속에서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미술 세계를 찾으려고 한 이중섭(李中燮) 같은 미술가로 대변된다면, 1980년대 이후의 민중 미술가는 정치적 운동가이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최근 일련의 미술가는 프로젝트를 따기 위해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자신의 미술을 설명하는 비즈니스맨의 이미지로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이들을 화가, 조각가라고 부르기보다는 행위 예술가, 아트 디렉터, 또는 아예 시각 예술 종사자라고 호칭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미술 작품은 예로부터 소유의 대상이었다. 제3장 ‘미술과 시장’에서는 소장가와 시장이라는 장소를 살펴보았다. 미술 시장은 우리나라의 정치와 경제, 각 시기의 문화 정책, 문화 향수 계층의 성격과 취향 등 다양한 변수와의 관계 속에서 그 성격이 만들어져 왔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의 소비와 수용을 사회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신화화된 작가, 미학화된 미술 이면에서 작용하는 자본, 상품, 욕망의 사회사를 살펴보는 일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미술의 상품화가 진행된 것은 18세기부터 서화 골동(書畵骨董)에 대한 수집 취미가 확산되면서부터이다. 서화의 유통 방식은 직접적인 수입, 증여, 중간 상인을 통한 구입, 서울 광통교 부근의 지전(紙廛), 향전(香廛), 병풍전(屛風廛) 등을 통한 직접 판매 등으로 다양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 경성 미술 구락부를 중심으로 한 경매회(競賣會)가 발전되었고 일본인과 조선인 관료, 재벌, 은행가, 의사 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수집가 계층이 형성되었다. 광복 이후에는 화랑 제도가 생겼으나 미술 시장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1970∼1980년대 신흥 부르주아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수요층이 형성되면서부터였고, 인사동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화랑 중심의 미술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미술 시장은 2000년 이후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과 맞물려 자본이 부동산에서 미술품으로 이동하면서 가격이 급등하여 이상 과열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최근의 국제 아트 페어 진 출, 경매 제도, 아트 펀드 등의 도입은 화랑을 중심으로 단선화(單線化)된 미술 시장 체제가 다변화하기 시작하였음을 보여 준다.

제4장에서는 ‘미술과 관객이 만나는 곳, 전시’라는 주제를 다루었다. 조선시대에 서화를 감상하는 방식은 수집가의 사랑방에서 혼자 또는 가까운 지인과 함께 이루어져 개인적이고 은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와 미술품을 공공장소에 모아 걸어 놓고 대중이 감상하는 전시라는 근대적인 방식이 도입됨으로써 미술품은 개인이나 기관이 소유하더라도 익명의 다수 대중이 감상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므로 전시와 관객의 존재는 근대 이후에 이루어진 문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정하게 제한된 공간에서 이루어졌던 전시 개념에 변화를 준 것은 1960년에 국전(國展) 낙선작들을 덕수궁 돌담 벽에 전시한 벽전(壁展)이나 1970년대 행위 미술 같이 공공의 공간에서 드러내 보인 미술의 형태들이다. 이러한 전시를 통해 미술품은 특정하게 닫힌 공간뿐 아니라 거리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며 일정한 공간에 걸린 공간적인 예술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1995년에는 제1회 광주 비엔날레가 열리면서 대단위 공간에 대규모 전시장을 짓고 전 세계 작가의 작품을 장기간 전시하는 방식이 전시와 감상의 새로운 전개를 이끌었다. 이후 각종 비엔날레가 난립하고 대형 블록버스터 전시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제1회 광주 비엔날레의 관중이 100만 명을 넘었다는 사실은 이들이 모두 현대 미술을 이해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이러한 대형 행사가 단지 미술을 알고 즐기는 층 이외에도 하나의 문화 이벤트로 관광과 연계될 수 있다는 미술과 산업적인 측면에서의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기도 하다.

도시는 이러한 다양한 미술 활동의 중심이다. ‘도시 공간과 시각 문화’를 다룬 제5장에서는 농업 국가에서의 전통적 삶이 도시적 삶으로서 전화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시각 문화를 논하였다. 지난 100여 년간 도시는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근대 건축물이 들어서고 박람회, 전시회, 백화점의 쇼 윈도 전시, 네온사인 등으로 거리는 화려해졌으며, 서양식 의상으로 멋을 낸 모던 보이, 모던 걸이 거리를 활보하였다. 근대적 시각 매체의 중심은 인쇄 매체였다. 사람들은 신문과 잡지를 통해 지식을 확충하고 백화점이나 박물관에 다니면서 시각적 관찰을 배웠다. 거대한 근대의 물결은 우리나라 사람의 주거 생활과 소비 생활을 변화시켰다. 근대 초기에 서양식 주거 양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문화 주택이 서양 주택의 편리함뿐 아니라 문화적인 특권 의식을 부여하였다면, 현대에 들어와 1970년대 중반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한 아파트 문화는 주거의 개념을 자본과 투기의 개념으로 바꾸어 놓았다.

도시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고 도시적 삶은 군중 속에서의 개인의 경험과 관계된다. 도시인들은 사적인 공간보다 공공 영역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을 수도 있다. 광복 이후부터는 미술관뿐 아니라 공공 공간에서 시각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영화관 간판, 선거 포스터, 현수막이 1950년대와 1960년대 거리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띠는 이미지였다면, 이 시기에 세운 약 150점의 공공 조각 역시 도시 군중의 시선을 끌었다. 6·25 전쟁 이후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주로 충혼비(忠魂碑), 위인이나 장군의 상이었던 이들 조형물은 국가의 이상이 무엇인지를 알리고 국가가 이들을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시사한다. 한편 지난 30년 남짓한 동안에는 테크놀로지와 통신에 기반한 시각 이미지가 일상생활에 범람하고 있다. 한동안 텔레비전이 가장 강렬한 시각 매체였으나 이외에도 전광판 그리고 인터넷의 월드 와이드 웹 등 상상을 초월할 만큼 도시인들은 다양한 시각 이미지와 마주치게 되고 이들은 우리의 일상에 침투하고 있다.

이상의 다섯 장을 통해서 이 책에서는 지난 100여 년 동안 이루어진 우리의 미술, 도시, 관객의 변화를 사회적·경제적·문화사적 변화와 연관시켜 입체적으로 분석해 보려 하였다. 근대 연구는 미술사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상당히 많이 이루어졌지만, 198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역사적 시각을 확보하기도 어렵고 심도 있는 연구가 적어 집필 과정에서도 저널리즘적인 시각에 그칠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미술 활동을 고립시키지 않고 도시 및 관객의 변화와 함께 살펴봄으로써 20세기 미술이 사회 변화의 맥락 속에서 어떻게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2008년 8월

서울대학교 교수

[필자] 김영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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