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2장 조선시대 성리학의 발전5. 여성의 성리학

여성들의 의식 성장

조선시대의 유교 교육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여성들에게 미치기 시작하였다. 조선 중기부터 문자를 해득하는 여성이 많아지고, 18세기에 이르면 양반 부녀자의 학문과 문예 활동이 현저하게 증가하였다. 임윤지당(任允摯堂, 1721∼1793)과 강정일당(姜靜一堂, 1772∼1832)은 높은 수준의 성리학 연구를 남겼고, 남의유당(南意幽堂, 1727∼1823)은 『의유당일기(意幽堂日記)』를 남겼다. 또 서영수합(徐令壽閤, 1753∼1823), 김삼의당(金三宜堂, 1769∼1823), 남정일헌(南貞一軒, 1840∼1922), 김청한당(金淸閑堂, 1853∼1890) 등은 한시집(漢詩集)을 남겼고, 이사주당(李師朱堂, 1739∼1821)은 『태교신기(胎敎新記)』를, 이빙허각(李憑虛閣, 1759∼1824)은 『규합총서(閨閤叢書)』를 남겼다.79) 이러한 현상은 이 시기에 성행하게 된 국문 소설의 보급이나 여성들의 독서 열풍과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며, 영·정조대의 문예 부흥적 분위기에도 맞는 것이다.

18세기 양반 계층 여성의 고급 문예 활동은 유교 교육이 여성 사회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을 보여 주는 것이며, 여성들 자신의 의식 성장이 이루 어지고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특히 임윤지당이나 강정일당 같은 사람은 성리학의 철학적 탐구를 통하여 여성이 본질적으로 남성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그들은 여성도 학문과 수양을 통하여 요순 같은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강한 자아의식(自我意識)을 표방하였다. 여성들의 이러한 의식 성장은 이 시기에 사회, 경제의 여러 방면에서 나타나고 있던 근대적 맹아(萌芽)의 하나를 보여 주는 것이다.

<독서하는 여인>   
선비 화가인 윤덕희(尹德熙, 1685∼1776)가 파초와 화조 병풍이 있는 뜰에서 책을 읽고 있는 부인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18세기에는 이와 같은 여성들의 독서 열풍을 바탕으로 양반 부녀자의 학문과 문예 활동이 크게 증가하였다.

앞서 거론한 여성 지식인이 대개 시문이나 가정 관리에 관한 저술을 남긴 데 비하여 윤지당과 정일당은 본격적으로 성리학을 연구하고 수련한 철학자였다. 그들은 성리학의 본질적 원리 안에서 남녀평등(男女平等)의 이념을 찾아내었고, 최고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하여 평생을 수양하고 실천하였다. 이들은 조선 후기 여성사에서 매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필자] 이영춘
79)조선 후기 여성 지식인들의 활동에 대하여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연구가 있다. 이은상, 『사임당(師任堂)의 생애와 예술』, 성문각, 1970. ; 정양완, 『조선 후기 한시(漢詩) 연구』, 성신 여자 대학교 출판부, 1983. ; 허미자, 『허난설헌(許蘭雪軒) 연구』, 성신 여자 대학교 출판부, 1984. ; 김동춘, 『한국 여류(女流) 시인 소고(小攷)』, 민족 문화 연구소, 1987. ; 김명희, 『허난설헌의 문학』, 집문당, 1987. ; 이영춘, 『임윤지당-국역 임윤지당유고-』, 혜안, 1998. ; 이영춘, 『강정일당』, 가람 기획, 2002. ; 김미란, 「조선 후기 여류 문학의 실학적 특질-특히 18세기를 중심으로-」, 『동방학지』 84, 연세 대학교 국학 연구원, 1979. ; 권영철, 「태교신기(胎敎新記) 연구」, 『여성 문제 연구』 2, 효성 여자 대학교 한국 여성 문제 연구소, 1972. ; 김덕수, 『김삼의당(金三宜堂)의 시문학(詩文學) 연구』, 전북 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1990. ; 이영춘, 「임윤지당(任允摯堂)의 성리학」, 『청계 사학』 11, 청계 사학회, 1996. ; 이영춘, 「강정일당(姜靜一堂)의 생애와 학문」, 『조선시대사 학보』 13, 조선시대사 학회, 2000.6. ; 김현, 「임윤지당(任允摯堂)의 경학(經學) 사상」, 『임윤지당의 생애와 사상』, 원주시·원주 문화원,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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