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척보
나열식 문자 악보의 일종인 공척보는 율자보와 달리 음악의 음고 관계를 표시하는 12율명이 아니라 그에 대응하는 한자 부호로써 선율을 기보하는 악보였다. 율자보가 율명을 쓰려면 한자의 획수가 많아서 번거롭기 때문에 간단히 표시하기 위하여 고안한 기보법이다. 공척보라는 이름은 율명 가운데 이칙과 남려를 표시하는 공(工)과 임종을 나타내는 척(尺)에서 나온 것이다.
공척보의 기보법상 특징은 음의 높이를 12율명에 대응하는 한자 부호로 표시하되, 한 옥타브 위의 4개음인 청황종, 청대려, 청태주, 청협종에는 그에 대응하는 한자 부호가 따로 있다. 곧 합(合)·사(四)·일(一)·상(上)·구(句)·척(尺)·공(工)·범(凡)·육(六)·오(五)와 같은 10개의 문자를 이용하여 16음을 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음악의 선법(旋法)을 알아야 정확한 음을 알 수 있다. 10개의 문자와 그것이 나타내는 음은 표 ‘공척보와 약자보’와 같다.
공척보 | 12율 4청성 | 약자보 |
합(合) | 황종 | ム |
사(四) | 대려·태주 | マ |
일(一) | 협종·고선 | 丶 |
상(上) | 중려 | 么 |
구(句) | 유빈 | ∠ |
척(尺) | 임종 | ㅅ |
공(工) | 이칙·남려 | フ |
범(凡) | 무역·응종 | リ |
육(六) | 청황종 | ク |
오(五) | 청대려·청태주·청협종 | 小 |
이렇듯 12율명과 4청성(淸聲)을 10개의 문자로 줄여 사용하기 때문에 공척보는 십자보(十字譜)라고도 하였다. 공척보를 약자로 기보한 것을 약자보(略字譜)라 한다. 공척보의 글자를 더 줄여 표기하기 쉽도록 만든 것이다. 최근에 약자보로 기보한 보허사(步虛詞)의 거문고 및 가야금 악보가 대전 시립 연정 국악 연구원(현 대전 연정 국악 문화 회관의 전신) 도서실에 있음이 밝혀진 바 있다. 이 악보는 양면과지에 철필(鐵筆)로 쓰였으며, 이왕직 아악부(李王職雅樂部, 1926∼1945) 시절에 기보된 악보로 추측된다.
그런데 공척보도 율자보처럼 소리의 음고 관계와 연주법을 통한 선율 흐름을 알 수 있으나 음의 길이와 박자를 표기하지 못하는 결함을 가지고 있다. 특히 공척보는 한 글자에 두 음 또는 세 음을 나타내기 때문에 그 음의 높이도 분명히 표시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선법을 모르면 음정을 정확히 표시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공척보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때는 율자보와 마찬가지로 1114년(예종 9)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공척보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당악(唐樂)을 기보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공척보를 사용한 악보로는 『세종실록악보』 중 임우(林宇)의 『대성악보(大成樂譜)』와 『세조실록악보』 가운데 신제아악보(新制雅樂譜)가 있다. 그 뒤 『악학궤범』 당악기의 지법(指法)에서 오음약보와 병기하여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