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2장 기보법의 발달과 악보3. 사대부와 풍류객이 펴낸 악보

16세기 악보

16세기에는 북전·중대엽(中大葉)·삭대엽(數大葉) 같은 관현 반주의 새로운 노래가 유행하는 한편, 거문고 중심의 기악 합주인 풍류 음악이 생겨나 사대부와 풍류객의 애호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만든 악보는 사대부가 개인적으로 펴낸 것이 대부분이어서 악보의 내용 또한 거문고 악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렇듯 거문고 악보가 많은 이유는 거문고가 사대부와 풍류객에게 각광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군자가 도덕을 강명(講明)한 나머지, 정신이 피로하고 몸이 지쳐서 활쏘기와 말 달리기를 할 수도 없고, 거문고와 비파를 탈 수도 없게 되면, 장차 무엇으로 정신을 화평하게 하여 성정(性情)을 기르겠습니까.117)

이는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의 글이다. 군자의 수양을 위해서는 거문고와 비파 연주 같은 정신적인 수양이 중요하다고 여긴 것이다. 그리고 예술에 뜻을 붙이는 것은 고결하고 깨끗한 선비의 마음으로 학문의 이치를 궁구하기 위해서라고 여겼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문인들은 거문고를 잡된 생각과 번뇌를 씻어 주는 악기이며 자연과 화답하는 매체로 인식하였고, 벗과 교제하고 여흥을 즐기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도구로 여겼다.

<임수아집도(臨水雅集圖)>   
18세기에 활동한 동래부(東萊府) 소속 화원(畵員) 변박(卞璞)이 그린 그림이다. 폭포가 떨어지는 계곡의 소나무 아래에서 선비들이 모여 악기도 연주하고 차도 나누어 마치는 모습이다. 조선시대 문인들이 음악을 자기 수양의 방편으로 삼았음을 볼 수 있는 그림이다.

한가로이 살며 구차스러운 가운데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것은 오직 책 한 시렁, 거문고 한 틀, 벗 한 사람, 신 한 켤레, 지팡이 한 개, 차 달이는 화로 하나, 등을 대고 따뜻하게 할 기둥 하나, 서늘한 바람을 끌어들일 창 하나, 잠을 맞이할 베개 하나, 타고 봄 경치를 찾아다닐 나귀 한 마리면 그만이다. 이 열 개는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이다. 늘그막을 보내는 데 이 밖에 또 무엇이 필요하랴.118)

이 글은 중종 때의 명신(名臣) 김정국(金正國, 1485∼1541)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이다. 여유와 청빈을 즐기고자 하는 조선시대 사대부의 마음가짐이 잘 드러나 있다. 거문고는 예로부터 소리가 깊고 장중하여 학문과 덕을 쌓는 선비들 사이에서 사랑을 받는 악기였다. 그리하여 사대부와 풍류객은 자신들이 가장 즐겨 타던 거문고의 악곡을 기록으로 남겼으니, 이것이 수많은 거문고 합자보가 전해지는 이유이다. 아울러 거문고 악보가 대부분 필사본(筆寫本)인 까닭이기도 하다.119) 곧, 거문고 악보집은 대부분 간행과 보급을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악곡을 익히는 데 참고용으로 쓰려고 편찬한 것이다.

『금합자보』는 개인이 펴낸 악보 가운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악보로, 1572년(선조 5)에 거문고의 명수인 안상이 편찬한 거문고 합자보이다. 『안상금보(安瑺琴譜)』, 『금보(琴譜)』라고도 부른다. 안상이 1561년(명종 16) 장악원 첨정으로 음악 행정을 맡았을 때에 악사 홍선종(洪善終), 악공 허억봉(許億鳳)·이무금(李無金) 등과 더불어 편찬하였다. 이 책을 편찬한 동기는 악공을 시험하는 보책(譜冊)이 예전의 합리적인 합자보를 쓰지 않아서 상하괘(上下棵)의 차서(次序)만 있을 뿐이고 손가락 쓰는 법과 술대 쓰는 법이 없어서 거문고를 처음 배우려는 사람이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단점을 보충하여 완벽하게 기보하기 위해서였다.

『금합자보』는 거문고 악곡을 합자보·오음약보·육보의 세 가지로 기보하였고, 장구와 북의 악보는 그림으로 기보하여 총보 형식으로 되어 있다.

비록 이 악보가 있어도 합자(合字)의 규칙을 모르면 담벼락을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므로 이에 합자 주해(註解)를 써서 책머리에 붙인다. 먼 시골에서 거문고를 배우고자 하여도 스승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이 악보를 보면 마치 스승이 곁에 앉아서 하나하나 가르치는 것 같아 하나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120)

안상 스스로 탄복하고 있듯이 『금합자보』는 기보가 정교하고 내용이 풍부하다. 악보는 1행 16정간 6대강으로 되어 있다. 거문고 악곡을 1행 오음약보, 2행 합자보, 3행 육보순으로 기보하고, 4행에는 노랫말, 5행부터는 적(笛)·장구·북 등을 적었다.

<『금합자보』>   
1561년(명종 16)에 안상이 편찬한 『금합자보』 중 금도(琴圖) 부분이다. 거문고를 도해(圖解)하여 각 부분의 규격을 명기하였다. 『금합자보』는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거문고 합자보로서, 내용이 풍부하며 매우 정교하다.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부분은 서문, 금도(琴圖)와 낙시조 평조(樂時調平調)·우조 평조·평조 계면조·우조 계면조·청풍체(淸風體)·최자조(嗺子調)의 산형(散形) 및 집시도(執匙圖)·안현법(按絃法)·박보(拍譜)·장구보·고보(鼓譜)·안공법(按孔法)·금합자해(琴合字解)·조현법(調絃法)이 그림과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둘째 부분은 평조 만대엽(平調慢大葉)·정석가·한림별곡·감군은·평조 배전·우조 북전(羽調北殿)·여민락·보허자·사모곡 등 아홉 곡이 실려 있다. 셋째 부분은 당비파도·평조 산형·계면조 산형·비파 탄법·비파보 합자해·지법·탄법·조현법을 그림과 함께 설명하고 있고, 비파만대엽의 악보가 실려 있다.

『금합자보』는 목판본으로 출간된 가장 오래된 거문고 악보로, 임진왜란 이전의 여러 악곡을 전해 주기 때문에, 『시용향악보』와 함께 조선시대 음악사 연구의 가장 기본적인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당비파 음악의 옛 모습을 전하는 유일한 악보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조성금보(趙晟琴譜)』는 16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현금과 비파의 명수 조성(趙晟, 1492∼1555)이 편찬한 거문고 악보로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1620년(광해군 12)에 이득윤(李得胤, 1553∼1630)이 편찬한 『현금동문 유기(玄琴東文類記)』 ‘고금금보문견록(古今琴譜聞見錄)’에 기록으로만 전해질 뿐이다.

조성은 평양의 가난한 양반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자연 과학 지식을 소유하기 위하여 꾸준히 공부하여 천문·지리·의학·수학 등에 정통하였다. 그는 음률에 밝았을 뿐 아니라 당시 널리 쓰이던 현금과 비파를 잘 연주하여 명성을 얻었다. 조성은 자신의 현금 연주 경험과 다른 사람이 창작한 가곡 작품을 모아 정리하여 현금 악보를 작성하고 그것을 『조성금보』라고 하였다.

『조성금보』에는 박수로(朴壽老)의 만대엽, 허사종(許嗣宗)의 만대엽·북전·삭대엽, 이세정(李世鼎)의 만대엽, 안상의 평조 대엽·평조 장대엽 등이 실려 있다. 이 악보집에 실려 있는 가곡 만대엽과 북전은 『양금신보(梁琴新譜)』에 있는 만대엽·북전과 함께 조선 전기의 대엽계 가곡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더욱이 오직 이 두 악보집에서만 선율을 기록한 만대엽을 찾아볼 수 있어 대엽계 가곡의 초기 형태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한 편의 만대엽이 국립 국악원 소장 『금보』에 남아 있는데, 정간보에 합자법을 쓰고 있으며, 거문고 합지법, 거문고 육보, 적보(笛譜), 적(笛)의 육보, 가사를 싣고 있다.

[필자] 권오성
117)『속동문선』 권12, 서(書), 「답이중평서(答李仲平書)」.
118)권별(權鼈), 『해동잡록(海東雜錄)』 2, 본조(本朝), 김정국(金正國).
119)장사훈, 『국학 논고』 서울 대학교 출판부, 1977 참조.
120)『금합자보(琴合字譜)』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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