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1장 벼농사의 도입과 쌀 문화의 시작1. 쌀과 벼

쌀을 가장 중시한 이유

벼는 재배하고 관리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먼저 제때에 충분한 양의 물이 필요하고, 병충해, 가뭄, 홍수 등의 재해를 받기가 쉬우며, 잡초 제거 등을 위해 손길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곡식이 되어, 지금까지 수천 년을 이어져 내려오면서 중심 곡식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쌀이 이렇게 오랫동안 아시아에서 주곡(主穀)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벼는 밭에서도 재배할 수 있지만 논에서 재배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논이 주는 장점이 있다. 논의 물은 외부에서 벼에 양분을 가져다주어 거름기에 많은 보탬이 된다. 비료 없이 재배를 해도 반타작 이상을 거두어들일 수 있을 정도이다. 또 논물은 잡초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밭에서보다 잡초를 없애는 데 들이는 노력이 훨씬 적다. 그리고 후대로 내려와서의 일이지만, 밭처럼 지력(地力)을 회복하기 위해 휴경(休耕)하지 않고 논에서는 벼를 계속 잇따라 재배할 수 있다. 아울러 논은 토양이 침식되는 피해도 별로 없고 오히려 토양을 보존하는 큰 효과를 낸다고 한다.

<약밥>   
찹쌀에 진간장으로 색을 내고 대추, 밤, 잣 따위를 꿀과 함께 넣어 시루에 쪄낸 대보름 절식이다. 약밥의 유래는 1500년 전 신라시대 찰밥에서 찾을 수 있다. 쌀은 수확량이 많은 장점뿐 아니라 수많은 종류의 떡을 만들 수 있는 등 가공식품으로서의 가치도 높다.

벼가 다른 곡식에 비해 가장 뛰어난 장점은 수확량이 월등히 많다는 점이다. 파종량에 대한 수확량, 또는 단위 면적당 수확량으로 따지면 밀이나 보리보다 배 이상 많고, 열대 지방에서는 한 해에 두 번 이상을 재배하여 거두어들일 수 있다. 또 쌀에 대한 기호도가 매우 높다 보니, 쌀값은 자연히 다른 곡식보다 비쌌고 벼를 재배할 때의 수익성이 높은 것이다.

수확량이 많은 것도 장점이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쌀의 영양성과 식품적 가치이다. 쌀로 지은 밥은 맛이 담백해 매일 먹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매력적인 곡물이다. 그러면서도 모든 곡물 가운데 가장 훌륭한 탄수화물의 공급원이면서 여러 영양소가 이상적으로 배합되어 있다. 또 쌀은 밥으로 짓는 이외에 가공식품(加工食品)으로서 이용성이 매우 다양하다. 우선 혼식(混食)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여러 가지 죽(粥)이 있으며, 가루나 찐 밥으로 수없이 많은 종류의 떡과 과정류(菓飣類)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발효시켜서 증편을 만들 수 있고, 엿기름으로 발효시켜 감주(甘酒)와 엿을 만들 수 있으며, 누룩으로 여러 가지 술을 빚을 수 있다. 쌀의 맛을 비롯하여 쌀의 물리적·화학적 성질이 이렇게 다양한 가공식품을 가능하게 한다. 게다가 쌀에는 멥쌀과 찹쌀이라는 찰기가 다른 판이한 두 계통이 있고, 이 두 계통마다 여러 품종이 있어 여기서 파생된 다양한 식품을 가공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쌀은 더 말할 나위도 없고 속겨, 왕겨, 줄기 부분 등 벼의 거의 모든 부분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이용하였다. 속겨는 기름을 짜기도 하고 가축이나 가금(家禽)의 먹이로 먹였고, 왕겨는 연료나 건축 재료로 쓰며, 볏짚은 소·말의 사료는 물론 섬, 뒤주 등의 각종 용기, 새끼, 방석, 짚신, 초가집 지붕 등 쓸모가 아주 많다. 낟알을 뺀 몸통 전체를 논바닥에 깔아 놓거나 불에 태워 거름으로 쓰기도 한다.

<짚신>   
경북 칠곡 동천동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짚신의 모습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벼의 모든 부분을 거의 생활에 이용하였다. 볏짚은 가축의 사료뿐만 아니라 짚신을 비롯한 각종 생활 용품을 만들어 쓰는, 없어서는 안 될 재료였다.

이렇게 벼는 밥과 다양한 먹을거리 외에도 버리는 것 없이 철저히 활용되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농사의 대상으로 중시되어 왔고, 쌀이 모든 곡식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주곡의 위치를 차지한 채 지금까지 유지해 왔던 것이다.5)

[필자] 박찬흥
5)이춘녕, 『쌀과 문화』,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1, 133∼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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