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4장 개항에서 일제강점기 쌀 수출과 농촌 사회3. 일제의 전쟁 수행과 조선의 쌀조선 총독부의 농촌 통제 정책과 농촌 사회

지주의 경제적 변화

1930년대 이후 지주의 소유 면적과 소작료 수입은 일제의 전쟁 수행 정책과 맞물리면서 확대되지 못하였다. 1939년 ‘소작료 통제령’이 발표된 이후 지주가 일방적으로 소작료를 인상하는 것이 제한되었으며, 지주의 부당한 소작 조건에 대해서는 농지 위원회와 지방 장관의 변경 명령권 등으로 일정한 제약을 가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1930년대까지 고율의 소작료와 농지 가격 상승이라는 조건하에서 유지되고 확대될 수 있었던 지주의 경제적 이해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조선 총독부는 부재지주(不在地主)가 농촌으로 복귀하여 농업 경영에 직접 참여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지주 활동 촉진 요강(地主活動促進要綱)’을 1944년에 공포하였다. 농지 개량, 지도원 설치, 경작자의 계몽과 훈련, 종자와 영농 자재 확보, 영농 자금의 저리 융통 알선 등 지주들이 농업 증산에 필요한 조치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지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에 순응하는 지주에 대해서는 비료, 농구기, 농약 등을 우선 배급하고 소작료의 액수와 비율을 인상할 수 있는 특별한 혜택을 부여하기도 하였다. 반면, 증산 정책에 순응하지 않는 지주에 대해서는 농장, 수리 조합, 조선 신탁 주식회사 등에 농지 관리를 맡기도록 강요하기도 하였다.

1931년과 1932년 설립된 성업사(成業社)와 조선 신탁 주식회사(朝鮮信託株式會社)는 지주의 농지 신탁을 통해 농지 관리를 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식산은행이 설립한 성업사는 파산한 지주의 농지를 인수하여 경영하였으며, 조선 신탁 주식회사는 경영이 어려워진 지주의 농지를 신탁 받아 경영하고 지주에게는 신탁료를 지불하였다. 초기 농지 관리 회사는 농업 공황의 여파로 지주 이익이 크게 위축됨에 따라 설립된 것이었지만, 점차 신탁 농지의 면적이 증가하였다. 조선 신탁 주식회사의 경우 회사가 직접 관리하는 토지 면적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였다. 1939년 59%였던 직접 경영 토지 면적은 1942년 72%로 늘어났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지주가 조선 총독부의 쌀 생산 정책의 최대 수혜자였던 것은 쌀 생산 구조가 지주 소작 관계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각종 금융 혜택과 정책적 지원 그리고 쌀값과 농지 가격의 전반적 상승은 지주제를 확대 발전시키는 원인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1930년대 농업 공황에 따른 농민층의 부채 불황이 심각해지자 이제까지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았던 지주의 권한에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지주의 권한이 제한되었다고 해서 농민층의 경제 상황이 개선된 것은 아니었다. 일제가 필요한 쌀의 증산을 위한 토지 개량, 일본 농법의 보급 등의 사업은 오히려 농민층의 부채를 확대시켰으며 결과적으로 농촌 사회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특히 중일 전쟁 이후 증산을 위한 농민 통제 정책과 쌀의 배급 및 공출제가 실시되면서 조선 총독부는 농민층을 물자와 자금 동원의 최말단으로 직접 통제하였다.

[필자] 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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