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1장 철제 농기구의 보급과 농사의 혁명

1.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농경

[필자] 전덕재

한반도에서 농경은 신석기시대 중기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당시에 농경은 채집(採集)과 수렵(狩獵)에 비하여 비중이 아주 작았다. 생산 경제가 경제생활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한 것은 벼농사가 보급된 청동기시대 중·후반기부터였다. 당시 농경의 구체적인 모습은 농경문 청동기(農耕文靑銅器)와 최근에 자주 발견된 경작 유구(耕作遺構)를 통하여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초기철기시대까지는 주로 목제나 석제 농기구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농경 기술의 진전은 비교적 더딘 편이었다. 밭농사는 휴경(休耕) 기간이 비교적 길었고, 논농사는 안정적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농업에서의 획기적인 변화는 4∼6세기 철제 농기구의 보급 이후에 나타났다. 기원전 4세기에 철기가 중국에서 전래되면서 일부 농기구를 철기로 만들었으나 효율성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 4세기에 단조(鍛造) 기술을 기초로 한 철기의 제작이 일반화되었고, 이때부터 U자형 따비, 괭이, 낫을 비롯한 다양한 용도의 철제 농기구를 만들어 농사에 널리 활용하였다. 당시에 축조된 고분에서 출토된 다양한 철제 농기구가 그런 사실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또 축력(畜力)을 이용하여 밭을 가는 우경(牛耕)도 철제 농기구와 더불어 보급되었다.

철제 농기구와 우경이 보급된 삼국시대 중·후반기에 이르러는 일부 경작지에서 상시 경작이 가능해졌으며, 축제(築堤)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대규모 저수지나 제방도 축조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다가 삼국 통일기에는 저수지에 수통(水桶)을 박아 관개(灌漑)하는 기술도 개발되어 수전(水田) 농법에서 커다란 진전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변화는 곧바로 농업 생산성의 증대로 직결되어 여러 가지 사회 변동을 불러왔다. 삼국이 4∼6세기에 중앙 집권적인 국가 체제를 정비할 수 있었던 것도 이에 힘입은 바 컸다.

지금까지 선사 및 고대의 농경에 대한 연구는 주로 유적지나 고분에서 출토된 곡물과 농기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청동기와 삼국시대 경작지를 발견하는 사례가 부쩍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은 경작지를 기초로 한 고대의 농경에 관한 연구는 활발하다고 하기 어렵다. 앞으로 청동기와 삼국시대 농경에 대한 연구의 진전을 위해서는 경작지의 분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데, 이 글은 그러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기초 작업의 하나로 시작되었다. 이 글에서는 우선 지금까지 진행된 연구 성과와 청동기 및 삼국시대 경작지를 조사하여 정리한 다음, 이것을 기초로 하여 선사와 고대 농경의 성격과 변천을 살필 것이다.

[필자] 전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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